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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개그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호 15면

아침프로를 무심히 보다 ‘죄민수’ 조원석의 집을 찾아간 화면이 눈에 확 띄었다. 변변한 대문도 없이 길가에 면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그의 집 안방은 장판도 깔려 있지 않은 시멘트 바닥이었다. 개그맨들이 늘 옥탑방이며 지하방을 전전한다는 이야기야 많이 들었지만 변변찮은 생활 터전을 공개하는 그의 마음이 편치 않았겠다 싶었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죄민수’로 30주 동안이나 그 기발한 표정으로 “피스!”를 외치며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그 개그맨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도 그는 “집 안에서 슬리퍼를 신는 미국식 생활을 즐기며, 겨울엔 보일러 틀고 맨바닥에 물을 부으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자동 사우나가 된다”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유머를 날렸다.

웃기려고 애쓰는 개그맨들을 보며 가슴이 짠해지는 건 그들이 연기자들이나 가수들처럼 큰돈 못 벌고 생명도 오래가지 않는 일을 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사는 게 늘 바닥을 치는 절망의 연속인 시기를 지내본 사람은 알 거다. 웃겨주는 사람들이 왠지 나와 같이 그 시절을 함께 버텨주는 동무 같은 느낌을. 일주일 내내 미소 한번 짓지 못하다가 안간힘 쓰며 웃기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소리 내어 한번 웃고 난 뒤에 느껴지는 그 고마움을.

‘몰래 카메라’에서 박준형이 10억원을 벌어서 개그를 포기하겠다는 정지헌에게 “그래도 이 일을 어떻게 포기하느냐”며 눈물을 흘리자 조작 의혹이 쏟아졌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은 박준형의 진심에 감동의 박수를 던져줬다. 그 믿음의 근거는 지난 세월 동안 그가 성실하게 웃기려고 노력해온 걸 모두가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긴 앞니로 무를 파먹는 갈갈이로 시작해서 ‘우비 삼남매’ ‘생활 사투리’ ‘개그 두뇌 트레이닝’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봉숭아 학당’에서 무려 9개의 캐릭터로 변신해 가면서까지, 그는 정말 되든 안 되든 갖은 방법과 아이디어를 동원해 웃겨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 최근엔 ‘변선생’에서 교장 선생으로 나와 학생에게 1.5L 생수 한 통을 들이켜라면서 “이러면 웃길 수 있다 웃길 수 있다”며 최면을 거는데, 말이 개그맨들의 절박한 심정이 아닐까. 박준형이 400회 특집 ‘개그 콘서트’에 나와 “무려 300회가 넘는 기간 동안 내가 출연했다”며 감회를 털어놓을 때 괜히 나도 울컥했던 건, 힘든 외국 생활 시절 우리말이 그리웠을 때, 그의 생활 사투리 개그로 울적한 마음을 달랬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였다.

그런 그가 한눈 팔지 않고 중심을 잡았기에 등락을 거듭하던 ‘개그 콘서트’는 요즘 잘 익은 된장처럼 한껏 물이 오른 안정된 웃음을 던져주고 있다. 변 선생의 속사포 말장난에서, 다이어트의 실체를 보여주겠다며 실제 몸짱에 도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의 몸 개그, 그리고 경상도 사나이의 권위적인 모습 뒤에 숨어 있는 나약함과 소심함으로 폭발적인 웃음을 던져주는 ‘내 인생에 내기 걸었어’의 김효원까지.

어서어서 한 주가 흘러 일요일 밤이 되었으면 싶을 정도로 그들이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그들이 있어 중년의 위기로 힘든 요즘도 버틸 만하다. 그러니 개그맨들, 정말로 고맙다. 날 행복하게 해준 만큼 돈도 많이 벌어서 그대들도 행복해지시길. 하지만 10억원을 벌더라도 끝까지 날 웃겨주는 친구로 남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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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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