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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도 친일논쟁 파문|임혜봉 스님『친일불교론』상, 하권 펴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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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전승을 위해 교주의 성상까지 내어 바친다는 것은 불교가 아니면 없을 것이요, 일본이 아니면 없을 것이다. 체적이 분 촌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불상까지 출동하셨으니 듣기에 얼마나 감격하며…국가를 위하여서는 불상까지 응소 하다니 참으로 장쾌한 일이다.』
친일승려 권상노(창씨 명 안동상노)가 불상을 무기재료로 일제에 바치며 한 말이다.
일제하 한국불교계의 매국·매종 사실과 친일승려의 행적을 소상하게 밝혀 수록한『친일불교론』상·하 2권(총 6백41쪽·민족사간)이 나왔다.
임혜봉 스님(46)이 각고 끝에 상재한 이 책에는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전해오던 친일불교의 전모가 담겨 있어 불교계에 커다란 각성의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일제하 신문과 불교잡지, 그리고 사찰기록 등을 모두 뒤져 정리한 이 책은 한국문화계의 첫 친일단죄서로 평가받는 임종국의『친일문학론』에 버금가는 역 저로 평가된다.
『친일불교론』은 1876년 한국병란의 첫 신호였던 강화도조약 이후 1945년 일제의 패망까지 일본의 불교침략과 한국불교계의 친일 뇌동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다음 4인의 친일거두 이회광·이종욱·권상노·김태치의 행적과 불교계의 창씨개명을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은 1895년 한국정부로 하여금 하층계급이었던 승려들의「도성출입금지」를 해제해 환심을 산 다음 병란후인 1911년 사찰 령을 반포, 조선사찰을 30본사로 분할하여 본사와 말 사의 주지임명권을 총독이 장악하고 조선불교를 일제에 예속시키는 교묘한 불교침략정책을 진행시켰다.
이 책은 이후 일제의 간 책에 놀아나는 조선불교계의 몰주체성과 친일전락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특히 3·1만세운동 무렵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항일운동에 투신했던 이종욱은 1926년 월정사 부채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제와 타협한 뒤 온갖 친일단체의 핵심임원으로 활동하다 41년에는 초대 조계종 종무총장(현 총무원장)이 되어 조선불교를 일제의 어용불교·친일불교로 전락시키는 반민족적 불교지도자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조선불교의 친일행각은 일제가 일으킨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기간에 극에 달했다.
일제는『황은을 갚지 않고는 불은을 갚지 못한다』『극락은 서천에 있지 않고 대동아공영에 있다』따위의 표어를 사찰에 내다 걸고 친일승려로 하여금 민족의 정기를 받들게 하고 그들의 수탈정책을 수행케 했다.
당시 많은 스님들이 탁발보국이란 이름아래 신도들의 주머니를 털어 모은 돈으로 1대에 8만원(당시 쌀 4천5백 가마 값)씩 하는 군용기를 5대나 헌납, 조선불교 호라고 명명했다.
당시 징병제를 옹호하며 조선청년들을 전장으로 내모는 친일논설을 발표하고 시국강연을 한 유명스님은 30여명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종욱·권상노 외에도 박원찬·김법룡·임석진·허영호 등 주도 그룹을 비롯한 30본사 대부분의 주지들이었다. 창씨 개명한 스님은 드러난 것만 해도 당시 전국의 승려 수 6천6백여 명의 절반이 넘는 3천3백59명에 이르렀다.
저자인 임혜봉 스님은『이러한 친일승려들 가운데는 해방 후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점에서 불교계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우리역사가 다시 쓰여져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이 책은 단죄가 목적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성찰의 의미를 띠고 있다』며『일제의 자료를 토대로 한「일제의 조선불교 침략정책 사」가 반드시 연구·집필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친일인사로 거론된 후손들이나 관련자들의 항의소동으로 출판이 1년간 유보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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