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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언니… 할머니 어디 있나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일가족6명 참변… 생존모녀 애절한 눈물
『아빠와 윤혜언니,할머니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볼수 있을거야… 윤선아….』
아빠와 언니 등의 죽음을 모른채 『아빠 보고싶어』라고 칭얼대는 여섯살짜리 딸을 달래던 어머니 원미숙씨(34·경기도 광명시 철산동)는 기어이 딸을 껴안으며 참았던 오열을 터뜨렸다. 간호사와 의사들도 고개를 돌린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27일 오전 전남 해남군 해남읍 우석의원 203호실. 아시아나항공 733편에 탑승했다가 일가족 9명중 남편과 딸,시어머니와 큰집 가족 등 6명이 몰살하고 살아남은 원씨는 오열을 터뜨리다 끝내 실신하고 말았다.
원씨와 남편 나홍기씨(38·약사),윤혜(8)·윤선(6) 등 두딸,시어머니 최금순씨(72),시숙 정기씨(48·약사) 부부와 조카인 윤숙양(17)·윤호군(15) 등 우애좋은 형제의 일가족 9명은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관광을 떠났다가 참변을 당했다. 목포에서 비행기를 내려 배편으로 홍도로 가 피서를 하려던 일가족의 꿈은 순식간에 깨졌다.
나씨형제는 여름마다 항상 온가족이 어머니 최씨를 모시고 함께 피서를 가는 효심많고 우애있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다.
최씨부부는 6·25당시 형제·친지들을 모두 이북에 두고 피난나와 홍기씨 등 3형제만을 뒀고 이들은 다른 친척이 없어 더욱 우애가 돈독했다.
큰아들은 충북 제천에서 의사로 개업중이고 둘째인 정기씨와 홍기씨는 서울과 광명에서 약사를 하는 등 아들들 모두가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이들 형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노모를 더욱 끔직이 모셔 해마다 여름만 되면 형제들 가족이 모두 모여 어머니와 함께 피서여행을 했고 지난해에는 함께 필리핀에 다녀오기도 했다.
『착륙 안내방송이 나온뒤 얼마 안돼 「꽝」하는 폭음과 함께 수라장이 됐어요. 팔·다리가 잘리거나 부러지고 사람들이 파편처럼 튀어나가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원씨는 남편이 조용히 눈을 감고있어 실신한 줄만 알고 곧 병원에서 만날 것을 기대했지만 원씨와 딸,조카 윤숙양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은 모두 숨졌다.
『비행기 안에 아빠 사진기를 두고왔는데 찾으러 가요,엄마. 비행기는 무서우니까 걸어서….』
칭얼대는 딸을 껴안은 원씨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최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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