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애 연극에 쏟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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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손봉숙씨(49·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는 비 문화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치곤 각종 예술분야에 두루 조예가 깊은 편이다. 특히 연극에 관한 한 그는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과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문학서적을 즐겨 읽기도 하는 그는 가끔 괜찮은 작품이라도 만나면 머리 속에 연극기획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솟아나곤 한단다.
반면 마당극을 토대로 한국적 연극 만들기에 꾸준히 매진해온 연극연출가 손진책씨(46·극단「미추」대표)는 새 작품을 시작할 때면 대본을 들고 손봉숙씨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곤 한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면서도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아낌없이 주고받는 그들은 누나와 동생사이. 손봉숙씨가 8남매의 셋째, 진책씨가 넷째면서 장남이다.
『어려운 극단 살림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가끔 흥행에도 신경 쓰라고 권하지만 동생은 도무지 들은 척도 안합니다.』
손봉숙씨는 걱정하면서도 『하지만 늘 동생 작품에 감동 받아왔으며 관객의 기호에 영합하기보다 좋은 작품만을 고집하는 동생이 든든하다』고 덧붙였다.
손진책씨는 마당극을 토대로 한 한국적 연극을 추구하면서 1년에 한편만 무대에 올리는 등 고집스럽게 연극에 매달려온 연출가.
86년 민족연극을 지향하는 극단「미추」를 창단, 『지킴이』 『오장군의 발톱』『영웅만들기』 『죽음과 소녀』 등 굵직한 작품만을 만들어왔다.
반면 손진책씨는 역시 「없는 형편」으로 여성정치참여 시민운동에 애써온 손봉숙씨를 가리켜 『어려서부터 똑똑한 누나』였다면서 『여자라는 사회적 통념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고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을 가졌던 누나활동에 신뢰를 느낀다고 말했다.
손봉숙씨 남편은 서울대정치학과 안청시 교수. 손봉숙씨는 『부부사이에 늘 얘깃거리가 많아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는다』며 같은 길을 걷는 부부예찬론을 폈다. 그건 진책씨부부도 마찬가지.
진책씨의 아내는 연극배우인 김성녀씨. 지난 6월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막이 올랐던 『남사당의 하늘』공연은 손씨 부부의 합작품이자 한국여성정치연구소지원 모금공연으로 열려 한가족의 뜻을 모은 공연으로 화제가 됐었다.
손진책씨와 김성녀씨는 철저하게 연극중심으로 부부생활을 가꿔왔다. 76년 극단 「민예」의 『한네의 승천』공연에서 연출가·배우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손씨가 오디선도 없이 김씨를 배우로 캐스팅 한 후 1년 뒤 서로 배우자로 전격 캐스팅(?)된 사연을 갖고 있다.
손씨는 이에 대해 『배우를 캐스팅 해온 실력이 아내 캐스팅에 가장 성공적으로 발휘됐다.』며 익살을 부리기도 했다.
연극계에서 「변신의 귀재」로 불리며 정력적으로 연극활동에 매달려온 김씨는 최근 『남사당의 하늘』은 물론 연극 『돼지와 오토바이』에서 열연하며 TV·라디오에도 부지런치 출연하고있다.
김씨는 남편 손씨를 가리켜 『눈물이 쏙 빠질 정도의 신랄한 비평으로 「극약처방」을 내리는 무정한 연출가』라고 원망하면서도 『그러나 외로운 예술의 길을 함께 걷는 동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스럽다』고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손·김 두 사람 사이엔 어머니를 능가하는 배우가 되는게 꿈인 딸(16)과 중학생인 아들(14)이 있다.
손봉숙씨는 『전엔 둘 다 연극계에 있는게 불안해 동생의 결혼을 말렸지만 지금은 올케를 사회 활동하는 같은 여자입장에서 아끼고 밀어주고 있다』면서 『세 사람이 방법만 다를 뿐 한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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