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가 일 벌리면 노씨가 마무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김정렬씨가 정규육사 11기 출신들과 잘 아는 것은 그가 11기생 민석원씨가 경영하던 정우개발의 회장으로 오래 있었기 때문이다. 민씨는 11기 출신으로 드물게 사업에 성공해 동기생들의 술값 스폰서였으며 그의 회사는 일종의 연락처였다.
노 사령관이 전 사령관의 권력장악의지에 신념을 불어넣고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적절한 도움을 줬다는 대목은 전대통령 쪽에서도 인정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권력장악은 보안사의 집권프로그램으로 추진된 것이지 노 사령 관개인의 기여는 별것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군부의 대외창구>
수경사령관 시절 그는 신군부의 대외창구였다. 국내외 언론인·대학교수 종교인들과 만나『우리는 민주적 교육을 받고 자랐다. 육사는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본떠 만들어졌고 그곳처럼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군인을 양성해왔다. 정규육사 출신들은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했다』고 전 사령관의 이미지 관리역을 했다는 것이다.
군대시절 노씨는 「깨진 사발을 맞추는」장기를 가졌다고 한다.
전씨가 일을 별이고 나면 수습은 노씨가 맡았다는 것이다. 노씨와 가까운 소위 9·9인맥으로 분류되는 Q씨의 회고.
『군대시절 전씨는 정규육사출신의 위상 확립과 하나회의기반확대를 위해 노력하면서 여기저기 부닥치고 소리가 많이 났지요. 적도 많았고 동기생 내부에서도 반감이 생겼지요. 노씨가 이를 그런 대로 정리해 반감이 안 가도록 마무리해주었고 속도를 조절해주었지요. 군대시절엔 적어도 어울리는 콤비였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중대장만 돼도 후임자는 전임자의 지휘방침을 뜯어고치려 하지요. 그런데 노씨는 전씨의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전임자가 돋보이게 지휘방침을 이어받았지요. 경호실차장보를 마치면서 전 소장은 차지철 실장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후임으로 들어간 노씨가 원만히 수습했다고 합니다.』
12·12때 노 소장은 자신이 9사단29연대를 동원한 것을 전 사령관의 정승화 총장 연행 뒷수습을 해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특전사와 달리 한미연합사령관의 작전지휘를 받는 29연대를 서울에 진입토록 한 것을 두고 그때까지 전씨한테 진 빚을 일거에 갚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29연대는 박희도의 공수1, 최세창의 공수3여단이 국방부와 특전사를 진압해 상황이 종료된 뒤 들어온 것이어서 12·12 논공행상을 따진다면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지요.』(T씨)
Q씨는 전·노 관계가 일방적 수혜관계였다는 지적을 반박하면서 상호보완의 측면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초급장교 시절, 노씨는 대구공고를 다니다 경북고에 편입했기 때문에 대구공고를 나온 전씨보다 교우관계가 넓었지요. 하나회 내부에서 김복동씨가 경북고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려할 때 경북고 1년 선배인 노씨가 늘 쐐기를 박았지요. 그때는 처남과 의절하는 기분으로 전씨을 밀어주었지요. 그가 정규육사동창회인 북극성회를 맡아 소령진급이 남보다 1년 늦은 것은 육사11기의 단합을 위한 것이었지요.』

<"무서운 사람 몰라봐">
이 부분에 대해 전씨 주변은 일축한다. 백담사시절 전씨는 『노태우가 대통령이 된 뒤 속마음이 드러났다. 무서운 사람인줄 모르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인줄 알았다. 실수했다』고 한탄한바 있다. 청와대출신 Z씨의 주장.
『노 대통령은 5공 7년간 2인자로서 설움을 받았다고 하지만 전대통령은 그를 다치지 않게 해주었지요 . 가령 3공 시절 박대통령은 JP를 방패막이나 민심수습카드로 써먹었지만 5공 때 전씨는 노씨를 그런 상황에 밀어 넣은 적이 한번도 없었지요.』
두 사람의 성격에 대해 군 동기나 후배들은 전은 「수색형」인데 비해 노는 「매복형」이라고 비유하고 있다. 이런 성향은 자란 환경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편모슬하에서 자라고 삼촌 집에서 등록금을 받은 노씨는 기질적으로 신중하고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반면 전씨는 한학을 하는 엄한 아버지와 많은 형제 속에서 「제몫」을 끊임없이 찾으며 성장해왔다.
『전씨는 귀가 얇습니다. 누가 이렇다고 얘기하면 금방 쉽게 결정하고 더 믿는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하면 쉽게 번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방대로 노씨는 신중한게 지나쳐 좀 체로 결정하지 않고 기다리지요. 밥상을 차려주기 기다리는 그의 성격은 어차피 전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무임승차만은 하지 않았지요.』(Q씨)

<"너무 신중한 성격">
그 하나가 5공시절 전대통령이 소홀히 했던 부분을 어느 정도 대신 챙겼다는 것이다. 가령 12·12때 당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던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에 대해 노씨는 끊임없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장씨의 봉전동 집으로 사람을 보내 정성을 표시했고 그 때문에 87년 대선 때 김영삼 진영으로 간 정승화씨와 달리 장씨가 노 후보를 위해 민정당사를 방문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이 심부름은 노 보안사령관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안병호씨(2군부사령관에서 지난 5월 예편 )가 했다.
전씨쪽 장군출신 인사는 『5공시절 정승화·장태완씨 등 12·12반대쪽 군인사들에 대한 관리가 미흡했다. 전대통령은 이 임무를 장세동 경호실장에게 맡겼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박보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