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브래너 각색 셰익스피어의 『헛 소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영국 출신 케네스 브래너가 세계무대에 알려진 것은 90년 영화 『헨리 5세』에서 각색·감독·주연을 맡으면서부터다.
셰익스피어극 배우 출신인 그는 이 야심적인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면서 로런스 올리비에와 비견할만한 거물 배우·연출가라는 평을 듣게 된다.
어쨌든 그는 이 영화에서 영화화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셰익스피어극을 건강한 영화적 스타일로 재구성하는데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는 평을 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신작 『헛소동』에서도 다시금 입증된다.
「지금까지 나온 희곡 중 가장 위대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이 셰익스피어 원작을 토대로 브래너는 17세기 이탈리아 메시나를 무대로 활기차고 거의 흥청망청하는 듯한, 유쾌한 사랑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물론 흑인 돈 페드로가 이 공국의 왕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공간은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은 어떠해도 상관없는, 작가가 만들어낸 상상적인 공간이다.
영화는 서로 얽힌 두개의 로맨스가 축이 되어 전개된다. 베아트리스는 재치가 넘치는 아가씨로 뭇 남성들을 우습게 여길 정도로 드세다.
그녀의 맞수인 베네디크는 총각으로 살기로 맹세한 자존심 강한 사나이다.
한편 이와 대조적으로 귀엽고 순진한 치로는 젊은 백작 클로디오와 열애하는 사이다.
그러나 클로디오는 다른 사람의 음모에 넘어가 그녀가 결혼 전날 자신을 배반했다고 생각한다.
브래너는 소란스럽고 음란하기까지 한 이 「짝짓기」게임을 연극적인 연출 수법을 통해 건강한 삶의 활기가 넘치는 경쾌한 드라마로 바꿔 놓는다.
자칫 우스꽝스러워지기 쉬운 독백의 활용과 과장된 연기도 그래서 무척 참신하다.
브래너의 부인 엠마 톰슨을 비롯, 베테랑급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영화의 격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다.
특히 도그베리 순경역을 맡은 마이클 키튼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뒤죽박죽인 엉터리 영어 구사에다 짐짓 진지한 체하는 그의 연기는 가위 미치광이 연기의 최고봉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이 상쾌한 영화는 사영 횟수를 맞추기 위한 수입사의 자의적인 삭제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그리 긴 영화가 아닌데도 몇몇 주요 장면이 잘리는 바람에 베아트리스-베네디크의 관계가 클로디오-히로의 관계에 비겨 필연성 없이 전개되는 듯한 인상을 갖게 한다.
그래서 관객들로 하여금 결과적으로 연출자의 의도를 잘못 읽게 만드는데 적잖이 기여한다.
관객을 우습게 보는 이 「음험한 가위손」은 언제나 사라질 것인가. <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