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장없인 못다니는 모가디슈(소말리아의 한국군: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밤낮총성… 온전한집 한채도 없어/반군장악 도로탈환… 수송통로 확보/도착날 인사나눈 AP기자 시체로
【소말리아=장남원·안성규특파원】 모가디슈는 열사의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전쟁터였다.
중앙일보 취재진이 받은 입국허가 조건은 「유엔군은 생명을 보장 못한다」는 것이었다. 40인승 UN­327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20명의 유엔 관계자와 함께 나이로비를 떠난지 2시간30여분만에 모가디슈에 도착했다. 비행기 트랩을 내리자 뜨거운 모래바람이 전쟁의 냄새를 안고 불어왔다. 복사열이 이글거리는 활주로 주변에 새로 급히 만든듯한 헬기장에는 블랙호크·코브라같은 전투헬기,러시아 대형헬기,C­130 수송기들이 곳곳에 자리잡아 짐을 부리고 있었다.
○일 기자 “조심” 충고
끊임없이 이·착륙하는 헬기의 소음이 날카롭게 귀를 파고 들었다. 곳곳마다 방탄복과 헬밋차림의 병사들이 순찰지프에 탄채 기관총을 겨누고 있거나 개인 소총을 움켜쥐고 경계자세로 서있다. 영화에서 보는 월남전의 상황 그대로였다.
공항 외곽의 모래둔덕에는 여러나라의 경비용 진지가 들어차 있다.
공항에는 청사가 없었다. 버스가 탑승객을 태워 내려준 가건물 같은 곳이 바로 출구였다.
아무런 수속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마침 일본기자 3명이 있었다. 『카메라도,장비도 모두 강도당해 오늘 나이로비로 돌아간다』면서 『몸조심하라』고 우리에게 충고했다.
우연히 소말리아에서 선교일을 보다 케냐로 잠시 돌아가는 임종표목사(45)라는 분을 만났다.
임 목사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라면서 절대 거리를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를 배웅나온 미국 연락사무소의 한 직원은 방탄조끼 차림에 장전한 M16을 움켜쥐고 있었다. 사태가 간단하지 않은 것같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임 목사의 부탁으로 기자들을 시내 사하피호텔로 데려다준 이들은 가는 길에 줄곧 총을 차창밖으로 겨누고 사주경계를 했다.
공항밖의 시내는 사실상 폐허였다.
온전한 집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모두 총자국으로 얽어 있거나 대포에 맞은듯 천장과 벽돌이 주저앉아 있다.
정문은 굳게 닫혀있다가 경비인 듯한 현지인이 신원을 확인한뒤에야 열어준다. 시골의 허름한 여관보다 못한 수준이다. 객실 가운데는 CNN·AP·REUTERS·AFP와 같은 국제통신사의 스티커가 붙어 있는 방들이 있다.
이들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한국에서부터 온 기자들에게 대뜸 『행운을 빈다』고 했다.
서둘러 한국군 연락장교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호텔 정문앞 폐차장에서 막 꺼내온 듯 생긴 택시를 할 수 없이 탔다. 보디가드를 포함해 하루 단위로 계약해야하고 값은 1백달러다. 그 차를 타고 1㎞쯤 떨어져 있는 UNOSOMⅡ 사령부를 찾아갔다.
취재진 등록을 했다. 신분증 없이 취재하다 유엔군의 총을 맞아도 별 수 없단다.
UNOSOMⅡ 사령부는 과거 미국대사관이 있던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연락장교인 김광우소령(육사 37기)은 쉽게 찾을수 있었다.
마침 사령부에서 이탈리아군 연락장교와 우리의 장비수송에 대한 경비문제로 씨름하고 있던 김 소령은 인사를 마치자마자 숙소가 어디냐고 묻는다. 사하피호텔이라고 하자 『여기가 어딘줄 알고 호텔에서 잠을 자느냐』면서 당장 자신의 숙소로 모든 짐을 가져오라고 명령하듯 한다.
죽고 싶지 않다면 현지인들이 모는 택시도 타지말고 무조건 경호병력이 따라붙는 유엔 운송수단만을 이용하라고 다짐받듯 한다.
김 소령과 함께 있던 장비책임수송 장교인 김성섭대위(육사 42기)와 함께 파키스탄 보병 2개분대의 호위를 받으며 한국군 수송담당 병력이 묵고 있는 신항구를 찾았다.
25명의 병력이 창고에서 타국병사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장 그날 오후부터 전투를 목격했다.
UNOSOMⅡ 사령부와 이탈리아군이 합동으로 모가디슈에서 발라드에 이르는 도로를 반군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한 작전이 진행중이었다.
이날 오후 2시쯤부터 시작된 소탕작전에는 블랙호크·코브라 등 전투 헬기가 동원돼 밤까지 계속되면서 수㎞밖에 있는 항구지역에서까지 화염이 목격됐고 기총사격소리가 들려왔다.
○언론인이 4명 사망
모가디슈에서 발라드에 이르는 도로는 우리측 선발대가 도착한 지난달 30일 직후부터 반군에 의해 장악돼 통행이 완전 두절되는 바람에 한국군 공병대의 물자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작전이 전개된 것이었다.
11일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에 걸쳐 시내 카이포지역에 대해 무장헬기가 동원된 불법무기 수색작전이 벌어져 시내통행이 제한됐다.
코브라·블랙호크 등 16대의 무장헬기가 이 지역을 집중 공격해 시내 전체에 포탄 작열음과 콩볶는 듯한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전쟁터의 한복판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유엔의 공격 장면이 CNN 네트워크를 통해 현장인근에 있는 UNOSOMⅡ 사령부의 TV에 즉각 중계돼 작전담당자들에게 공격 현장이 TV로 생중계(?)되는 기이한 장면도 펼쳐졌다.
이 전투에서 아이디드파 반군과 민간인들이 30명넘게 사망하거나 부상했고 AP·REUTERS기자 등 언론인 4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즉각 전해졌다.
이중 AP사진기자는 목과 팔이 잘리고 가슴이 칼로 난자당한 시체로 발견됐다고 현지 미군 관계자는 설명해줬다.
이 AP기자는 도착당일 우리가 사하피호텔에서 인사를 나누며 행운을 빌어줬던 그 기자였다.
온몸에 소림이 퍼졌다. 유엔의 공격이 강화되는 만큼 반군의 저항도 필사적이었다.
반군 저격병이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는 정보가 12일 오후부터 유입돼 유엔소속 모든 차량에 대해 운행제한 지시가 내려졌다.
무장경비차량을 제외하고는 오후 6시이후 운행이 거의 금지됐다.
어둠은 공포를 몰고왔다.
대부분의 기지에서는 밤새 기관총 위협사격을 했고 조명탄도 수시로 발사됐다.
시내취재를 나섰던 영국 기자가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됐다는 소식도 이때쯤 한 미군상사가 전해줬다.
○시민들도 무장
이런 와중인 11일 오후 사령부를 조금 벗어난 주택가로 취재를 나갔다. 사진촬영을 하려하자 어디선가 돌들이 날아왔다. 무장한 아랍에미리트 병사가 급히 총을 들고 달려와 초소로 끌고갔다.
시내에서의 반군과 유엔군의 공방은 마치 시내 게릴라전과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유엔군은 모가디슈의 항구나 공항·사령부 부지정도만 장악하고 있을 뿐 시내 전체는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시민들은 너나없이 할 수만 있으면 무장을 하고 나선다.
기자가 항구에서 사령부로 이동하기 위해 지난 11일 잠시 빌려 탄 민간인 자선단체의 픽업도 그 한예다.
차가 항구 입구를 나서자 일행 가운데 한명아 갑자기 의자밑을 뒤지더니 장전한 권총을 꺼내면서 기자를 봤다.
가슴이 섬뜩했다. 곧이어 다른 사람들도 부시럭 부시럭 의자 밑에서 장전된 총을 꺼낸다. 이들의 총은 자신을 경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아뜩했었다.
우리는 14일 연락장교 김 소령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할수 없으므로 즉각 철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1주일만에 나이로비로 되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본 모가디슈는 불안한 구름에 덮여있었다.
희망회복작전이 시작된지도 벌써 8개월로 접어들고 있지만 모가디슈에는 아직 희망이 자리잡을 공간이 없어보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