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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는 연극』외설 시비 "불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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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연극계에서 표현자유의 확장과 상업성이란 양립하기 어려운 두 목표사이에서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온 몇몇 공연들에 대해 본격적인 외설 논쟁이 예상되고 있다.
논쟁의 계기는 최근 반 나, 누드연기로 화제가 된『불의가면-권력의 형식』을 연출한 채윤일씨가 다음 작품으로 준비중인『0.917』이 뜻밖에 엉뚱한 비난에 휘말리며 결과적으로 공연이 불가능하게 된 것.
이 작품은 당초 8월1일부터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막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아역배우의 돌연한 출연거부로 지난 15일 공연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연출가 채씨가 한달 여의 연습을 무효로 하고 공연을 취소하게 된 직접적 이유는 아역배우의 부모가 일부 언론에서 이 작품을 벗기기 연극과 함께 싸잡아 비난한데 자극 받아 출연을 금지시킨 때문이다.
『0.917』은『산씻김』『카덴자』『가부가』등 독특한 상징의 세계를 그려 온 극작가 이현화씨 작품으로 81년 초 연됐다. 84년에는 1년간 장기 공연되며 그해 대한민국 문학상(희곡부문)도 수상한 작품이다. 어린아이가 어른을 성적으로 유혹한다는 상징적 내용을 담은 이 작품은 80년대 공연 때도 왜곡 해석돼 도덕주의 적 비난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 공연 중에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선정적 해석에 관한 시비는 일단락 됐었다.
최근「벗는 연극」들의 등장과 함께 이 작품까지 시비대상이 됨으로써 연극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무대 위의 성적 표현의 한계나 외설시비를 재는 기준이 정리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게 일고 있다.
당사자인 채씨는『막도 올라가지 않은 작품을 연극계 밖의 시각으로 마구 평가하는데 어처구니가 없다』며『10년 전과 똑같은 잣대로 연극작품을 재단하는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극계에서도 사회일반의 막연한 도덕주의 적 평가에 대부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무대에서의 과도한 노출이나 야한 표현이 상업적 유명행위라는 연극계 내부의 거부감도 상당 부분 존재해 논쟁자체는 다분히 시비 거리를 안고 있다.
연극계에서 외설문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80년대 초로『엘리판트 맨』에서 여주인공이 웃옷을 벗는 장면이 있었지만 당시는 탐미적 예술표현의 수단으로 해석되고 넘어 갔었다.
또 88년『매춘』공연은 무대에서 금기 시 돼 온 에로티시즘표현에 대해 반기를 들어 사회적 물의를 빚었지만 결국 공연 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 제를 폐지케 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금년 들어 연극계에서「벗는 연극」에 대한 논쟁은 일찌감치 예견돼 왔었다. 특히 새 정부 출범이후 많은 연출가들이 자신을 스스로 제약했던 심리적 검열기준을 털어 버리려는 태도를 보여 공연전문잡지에서 연초부터 외설과 미학적 에로티시즘과의 차이를 담은 특집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더욱이 이번에는 연극계에서 비판세력의 존재가 분명한 이윤택·채윤일씨 등 이 문제소지를 제공했고 연극협회 임영웅 이사장이 관련돼 예상외로 문제가 한층 심각하게 다뤄질 전망이다.
『불의 가면』의 경우 연극 협회장이 운영하는 극장(산울림소극장)에서「이상한 작품을 공연할 수 있느냐」는 일부의 비판을 받아들여 연기분과위원장인 이진수씨 등 이 사실확인을 위해 일부러 관람하기까지 했다. <윤철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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