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수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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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가 이른바 심령적 초능력을 실제로 체험해 본 것은 지난 84년 이스라엘인 유리 겔라를 만났을 때였다. 그는 본사 편집국에서 기자들이 가까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연만으로 포크를 구부리고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 그린 그림의 내용을 알아맞혀 보였다.
이같은 「초능력」 또는 「염력」이라고 하는 심령술에 세계적으로 붐을 이룬 것은 70년대 중반부터의 일이다. 유리 겔라와 그 아류들이 도처에서 놀라운 신통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예컨대 필리핀에서는 질병을 진찰하고 맨손으로 외과수술까지 하는 심령요법이 유행했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는 한 인도사람이 개발한 초험적 명상법(Transcend ental Meditation)이란 것이 인기를 끌었다. 짧은 시간의 명상으로 스트레스를 없애며 지각능력을 증진시킨다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붐을 일으킨 적이 있다. 80년대 들어와서는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이른바 정신조절법이란게 매스컴을 탔다. 정신력을 「초감각적 지각」으로 바꿈으로써 자기 전생과 사후세계의 형상까지도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나타나 증언하고 다닌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우주와 인체가 작도 있는 「기」를 활용한 양생기공·무술기공,심지어 의료기공 같은 초자연적이고 초과학적인 비술이 정신과 육체의 건강은 물론 난치병 치료에도 영험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토록 사통팔달하는 초능력이라 해도 범인을 수사하는데 신통력을 발휘했다는 말은 아직 없다.
어는 심령술사가 꿈의 계시에 따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지목한 사람을 경찰이 40여시간이나 추궁해 범행을 자백받았다고 한다. 진범 여부야 앞으로 가려내겠지만 수사의 단서가 물증이 아니라 심령술사의 꿈이었다니 흥미롭다.
예전엔 어느 집에서 도둑을 맞으면 종이에 사람의 화상을 그려 대문이 붙여놓고 『화상의 눈에 송곳을 꽂으면 도둑이 눈이 멀게 된다』고 소문을 냈다. 도둑을 위협해 자백을 유도하려했던 것이다.
심령술사의 꿈을 근거로 수사하기보다는 차리라 경찰서 현관에 사람의 화상이라도 그려놓고 위협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과학수사가 아니라면 애먼 사람의 인권을 유린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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