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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 허물었지만 의혹은 여전/서둘러 끝낸 율곡사업 특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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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짧은 시간내 나름대로 애쓴 흔적/전문성 부족… 구조 비리규명 한계
지난 4월27일 세인의 이목속에 착수됐던 율곡사업 특감이 9일 그 결과발표로 54일만에 사실상 종결됐다.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와 이회창원장의 감사원은 이번 율곡사업 특감을 통해 각각 성역없는 개혁의지와 독립사정 기능을 실현하려 노력했다.
율곡사업은 74년부터 물경 30조원가까이 투입됐고 지금도 해마다 국가예산의 9분의 1 정도가 소요되는 대표적인 국책사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공룡같은 사업은 국민의 감시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군은 두터운 보호막으로 율곡사업을 감쌌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씨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은 정권의 주요기둥이 되는 군을 보호하기 위해 감사의 칼날을 멀찌감치 제쳐두었다.
하지만 93년엔 상황이 달랐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군에 대한 민의 견제가 확립되고 대표적인 사정대상으로 군무기도입 비리가 꼽혔다. 감사원도 독립헌법기관으로의 위상을 다시 찾으려는 대표적인 시험무대로 율곡사업 특감에 착수했다.
50여명의 감사인력,국방부·각군 본부 등에 대한 실지감사,54일이란 감사기간,전직장관·각군 전 참모총장 등에 대한 사상 처음의 출국금지·소환조사·계좌추적 등으로 율곡사업 특감은 관심의 초점이 됐다. 이런 규모와 방법은 감사원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같다.
특감결과가 국민의 의혹을 씻어줄 만큼 완전한 것으로는 평가되지 않지만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은 엿보인다는 평가다. 장관·대통령참모 등 6공 국방수뇌부의 수뢰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노태우대통령의 6공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도덕성에 크게 상처를 입었다.
율곡사업의 구조·제도·예산집행 부분에서도 1백18건이 지적됐다. 군기밀 보안의 이유로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율곡사업이 얼마나 허술하게 추진돼 왔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의의와 열매의 한편으로는 몇가지 문제와 쟁점도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특감이 「속시원하다」고 해서 정말로 군의 개혁과 발전에 효율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으냐는 의문이다.
군은 기본적으로 거대하고 방만한 조직체다. 진급·무기도입 뇌물 같은 비리는 병리현상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숙제는 군조직·기능 전체가 어떻게 하면 비리를 막을수 있도록 구조적인 개선을 해나갈 수 있느냐는 데 있다.
따라서 먼저 군의 구조·제도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개혁구도」을 마련해놓고 이 틀속에서 감사를 진행해야 하지않느냐는 지적이 만만치않다.
둘째는 감사원의 능력이라는 과제다. 감사원은 인력도 부족하고 군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감사에 적지않은 애로를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감사원은 원구조개선을 통해 이 숙제에 접근하려 하고 있다.
전직대통령 조사나 수뢰자 및 군관계자에 대한 처리기준 설정,권영해 국방장관 조사 등을 처리함에 있어 감사원이 여러가지 주변사정을 지나치게 의식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독립기관이라고 해서 정치·사회적 상황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감사원은 전 대통령 조사에 대한 사회의 논란을 너무 오래 방치했고 권 장관조차 사실을 극비리에 붙이려했다. 또 몇몇 인사에 대해선 소환조사 계획을 철회하고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김진기자>
◎청와대와 감사 조율한 적 없다/이 감사원장 일문일답/미국측 관련자료 협조 전례가 있어 기대/일정기간 계속 감사… 수사의뢰 생각안해
­전직대통령에 대해 소명기회를 주는게 좋다는 건 감사원의 입장인가,아니면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의 입장인가.
『소명기회를 주자는 것은 전적으로 감사원의 판단이고,결정이다. 청와대와는 협의하지 않았다.』
­금품수수 증빙서류가 없다고 하면서 6명을 금품수수 혐의로 고발한 이유는.
『고발된 대로 무기중개상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은 확인됐다. 그러나 그외에 외국의 제조업체나 국내 재벌로부터 몇백억,몇천억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소문은 확인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전직대통령에 대해 조사하지 않을건가.
『과연 외국에서 협조하겠나 하는 의문이 있어 바로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뒤 들은 바로는 미국도 부패방지와 청렴을 위해 정부간의 조사협조를 반드시 기피할 것만은 아니라고 들었다. 과거 일본 경찰도 록히드사건과 관련해 미국정부의 협조를 받는 적이 있다. 그래서 시도해보는 것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전직대통령은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고 말했는데 이런 대통령의 뜻에도 불구하고 조사하겠다는건지 분명히 밝혀달라.
『김 대통령이 역사의 심판에 맡긴다고 말한 것과 전직대통령에게 소명기회를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게 아니다.』
­차세대전투기 사업의 비리내용은 뭐고,노 전 대통령의 비리의혹은 무엇인가.
『실제 문제된 것이 무엇이고,제기된 의혹이 무엇인지는 감사대상 내용이다. 그것은 감사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공표할 때까지는 밝힐 수 없다.』
­감사의 방향과 관련해 김 대통령과는 얼마나 조율을 했는가.
『그런 말은 나나 대통령 모두 듣기 좋은 말이 아닐 것이다. 감사 진행방향·계획에 대해 그때그때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앞으로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는.
『74년부터 해온 사업을 두달만에 감사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초는 잡혔다. 수감기관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직 계획은 없으나 일정기간을 두고 계속 감사하겠다.』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생각은 없는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감사와 수사의 범위는 달라 감사는 했으나 수사의뢰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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