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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판사 「사법부개혁 의견서」/요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우리의 현대사는 물리적 강제력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 통치체제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이제 막 빠져나오고 있다.
우리 사법부도 그 긴 터널의 끝에서 이제 사법부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으나 아직도 국민들은 우리 사법부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우리는 국민들의 준엄한 질책으로부터 우리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가의 정치권력이 법의 이름을 빌려 민주적 기본질서와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할 때 민주적 기본질서와 기본권의 수호를 1차적 임무로 하는 사법부는 마땅히 『그것이 법(Justice)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난 시절 우리 사법부는 그와 같은 선언을 침묵으로 대신하였고,나아가 「그것이 정의」임을 선언할 것을 강요하는 현실의 정치권역 앞에 무력하기도 하였다. 그와 같은 침묵과 무력함이 당시의 시대상황에서는 불가항력적이었다거나 또는 그것은 「법률」에 따른 사법권의 행사였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법부의 존재기반은 바로 그와 같은 불가항력적 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법률」의 모습을 한 제도적 폭력으로부터 민주적 기본질서와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바로 그것 임을 사법의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사법부는 그 존재기반을 외면하였으며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시대에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은 고사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부분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상황논리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때로는 사법부 안팎의 통제에 의하여 용기를 억압받기도 하였으며,때로는 나름대로의 「소신」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상황을 초종하기도 하였다.
판사들은 판결로써 말해야 했을 때 침묵하기도 하였고,판결로써 말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하기도 하였으며,판결이라는 방패뒤에 숨어 진실에 등돌리기도 하였다.
사법부는 고립되어 서로를 불신하기도 하였고,서로를 경원하기도 하였으며,서로를 통제하기도 하였다. 마침내 사법부의 권위는 법정에서 조차 유지되지 못하는 참담한 사태를 맞이하기에 이르렀고,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차라리 냉소에 가까운 것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사법부는 무엇이 법인지를 선언하지 않으며,불의를 응징하지도 않으며,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밝혀주지도 않는다는 국민들의 냉소에 찬 불신은 사법부의 모든 판단을 의심하기 시작하였고 판사들을 의혹에 찬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으며 사적 분쟁의 해결에서조차 사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 모든 비난과 오해와 질책 속에서 우리는 결국 모든 책임은 우리 판사들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제 우리는 지난날 우리 사법부의 역사와 국민들 앞에 참담한 심정으로 속죄하면서 우리 사법부가 인권수호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서 그 책무을 다하지 못하게 된 사법부 안팎의 원인들을 되새겨보는 과정을 거쳐야만 사법부의 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사법부 개혁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사법부 개혁의 근본원인에 대한 자기반성과 검토결과를 토대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기본입장에 서서 다시는 과거와 같은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사법부내에 견고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개혁의 근본취지가 제도개혁방안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제도적 개혁과제들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다시한번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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