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백인들 "『우리만의 국가』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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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정권 수립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남아공 백인들은 최근 자신들의 자결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아프리카너만의 국가』를 건설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남아공의 집권 국민당과 흑인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남아프리카 민족회의(ANC)를 비롯한 26개 흑·백인 정당이 참여하고 있는 다민족 정치협상기구인 민주 남아공 회의(CODESA)가 최근 백인지배를 종식시킬 수 있는 총선거를 내년 4월27일에 실시하기로 잠정합의 했다는 발표를 계기로 흑인정권 수립가능성은 백인들에게 위기의식을 갖게 하고 있다.
만델라 ANC의장은 흑백 정치협상에 잠재적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이같은 백인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백인들에게 유화적인 제스처를 꾸준히 보내고 있지만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80%의 남아공거주 백인들이 그의 전실성에 대해 회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아공 백인들의 이같은 불안한 심기는 지난달 17개 우익단체 연합인 아프리카너 국민전선(Afrikaner Volksfront)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아프리카너 국민전선은 대외적으로는 현재 진행중인 흑백정치 협상에서 백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압력단체 노릇을 할 것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체의 지도부에 4명의 퇴역 장성이 포진하고 있는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단체의 출현이 단순한 압력단체의 역할에 그치기보다 극단적인 경우 백인들의 자결권 확보를 위한 무장투쟁의 구심점이 돨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같은 평가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25일 발생했다.
소총과 권총 등으로 무장한극우파 백인 수백 명이 이날 인종차별 종식을 위한 흑백 민주화협상이 열리고 있는 요하네스버그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의 철 대문을 장갑차로 부수고. 회의장안으로 난입, 백인독립국가 건설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난동은 아프리카너 민속전선이 수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6개 흑백협상 참여정당인 보수당(CP)이 전날 별도의 백인국가 건설 안을 제의했다가 협상단체 대표들로부터 실행가능성이 없고 인종 차별주의 적이라고 일축 당한 뒤 발생했다.
백인 독립국의 후보지로는 백인들이 현재 가장 많이 거주하고 광물이 풍부하며 농업 기반이 갖춰져 있는 트랜스발과 오렌지 자치주가 거론되고 있다. 이 지역은 1902년 보어 전쟁에 패해 영국에 합병될 때까지 독립 아프리카너 공화국이 존재했던 지역으로 3백만 아프리카너들에게는 고향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이날 난동으로 아프리카너 국민전선이 추진하고 있는 아프리카너만의 국가건설 움직임이 앞으로 전개될 남아공의 정치일정과 맞물려 새로운 변수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창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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