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힘세진 일 관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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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국혼란에 행정집행 권한 강화/인사권은 사무차관이 실질행사
정치가·관료·기업인 집단은 일본을 지배하는 3대지주다. 이들 3대 세력은 상호견제와 협조로 일본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은 어느 한쪽이 우위에서 상대를 일방적으로 지배하지 않고 상호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정치가는 형식상 관료를 지휘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반면 정치가는 자금줄인 기업인에게 약하고,기업인은 각종 규제권한을 갖고 있는 관료에게 허리를 굽힌다.
이같은 세력균형이 자민당 분열로 흔들리고 있다. 관료임면권을 가진 정치감 집단의 약화로 관료들의 힘이 비대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관료들은 현재의 정국 혼란에 대해 『국내외에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 태산같은 데 책임있는 정권이 아니라 기반이 약한 연립정권이 들어서면 큰 문제』라며 겉으로는 곤혹스런 표정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예의상 흔히 한번 해보는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2일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 신문 3면의 「뉴스한마디」에 나온 다나하시 우지(붕교우치) 통산성 차관의 말이 이를 극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는 『가스미가세키(가가관·일본의 관청가)는 기구·인재면에서 어떤 사태에도 대응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같은 신문 국제1부 스즈오키 다카부미(앵치고사) 차장은 『다나하시 차관의 얘기는 일본의 관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속마음』이라고 밝혔다.
사실 일본의 행정은 관료들이 좌지우지해왔으며 모든 정책은 이들의 머리에서 나오고 있는데,누가 총리가 되면 어떻고 누가 장관이 되면 어떠냐는 것이다.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정치인 장관이나 총리가 권력기반이 약해 행정을 모두 관료들에게 맡길 것이므로 관료들의 권한이 강해져 속으로 기뻐할지로 모른다.
일본의 각종 정책은 모두 관료들이 입안한 것을 장관이나 총리가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TV 동경의 다무라 데쓰오(전촌철부) 보도국 총무(국장대리)는 『정치인은 이해단체의 조정을 하는 것이 역할이지 행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말해 정치인은 중앙정부로부터 지역구 예산을 따다가 공공사업을 펴는 것이 고작일뿐 모든 행정은 관료들이 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인 장관이 힘을 못쓰는 이유중의 하나는 장관에게 인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법률상으로 장관은 인사권이 있으나 실질적인 인사권은 관료출신의 사무차관이 갖고 있다. 장관이 섣불리 인사권을 행사하려 했다가는 관료들이 똘똘 뭉쳐 항거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과거 미키 다케오(삼목무부) 총리가 통산상시절 자신의 의도대로 인사를 하려하다 사무차관 이하가 이에 집단 항거함으로써 실패한 적이 있다.
역사상 장관이 인사까지 마음대로 하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정침인은 몇 안된다.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 총리가 가네마루신(김환신) 전 자민당 부총재정도다.
다나카 전 총리는 대장·통산·건설성에,다케시타 전 총리는 대장성,가네마루 전 부총재는 건설성 인사에서 장관다운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관료들의 뒤를 끝가지 봐주는 지도력,해당부처의 조례까지 뀌뚫어보는 부처 사정에 밝은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일본 정국이 혼란스럽다 하더라도 국내정책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특히 야당이 집권할 경우 그들은 행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관료들의 권한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것이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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