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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역할(신명나는 사회:20·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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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여야의원·정치학자 정담/“개혁의 「제도적 틀」 서둘러야”/냉소주의 버리고 여·야가 힘 합칠때/백/지자체·의회활성화 없이는 불투명/이/노사관계·교육등 공평성 확립,건전한 비판세력 긴요/장
□참석자
백남치 민자당의원
이해찬 민주당의원
장달중 서울대교수
「신명나는 사회」 시리즈를 마감하는 의미에서 여야의원과 정치학자가 참석한 좌담을 마련해 정치권이 해야할 일,특히 새 정부 출범후 시작된 개혁작업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제와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참석자들은 여야없이 개혁의 중요성과 진정한 개혁을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의 시급함에 뜻을 같이했으며 정치가 잘 풀려나갈때 여타 사회 각 분야에서도 신명나는 삶이 일궈지리라 기대했다.
참석자는 백남치(민자)·이해찬의원(민주),장달중교수(서울대·정치학).
○“청와대중심” 우려
▲장달중교수=먼저 새 정부 출범후 지금까지의 성과를 점검해 봅시다.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문민정부가 탄생함으로써 정치구조의 토대가 변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이 변했는가는 의문입니다.
지난 1백일을 보자면 본질을 이전과 마찬가지로 평가됩니다. 여전히 정책결정이 청와대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결국 대통령과 국민만 남고 그 중간의 각종 제도와 집단은 의미를 상실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문민권위주의도 우려됩니다. 물론 집권 초기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면들이 있겠지만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불안을 느끼는 국민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정적시각 벗자
▲백남치의원=해방이후 우리에게는 진정한 대통령의 리더십이란 지금까지 독재적 권력으로 변질돼 왔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다운 대통령,진정한 리더십을 갈망해 왔고,지난 대선의 결과가 바로 그것이었다고 봅니다. 이제 국민들이 바라는 진정으로 강한 리더십이 탄생한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된 시각,부정적 시각으로 현재의 리더십을 봐서는 안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인치·민치·법치논쟁도 문제가 있습니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인치입니다. 대통령제하의 리더십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옵니다. 인치라는 말에 담긴 비판의 의미는 탈법적·초법적 권한행사를 말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그런것이 있었습니까.
▲이해찬의원=지금까지의 개혁을 평가하자면 한마디로 개혁이라기보다는 사정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강이 오염됐는데 물위의 쓰레기만 줍는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정화시설이 곧 정치자금법·선거법·실명제 등의 제도적 장치들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문민정부가 엄정한 의미에서 정권교체를 이룬 정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김영삼대통령이 단독으로 집권했다면 개혁의 폭은 넓을 수 있는데 3당합당으로 집권했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3공이후의 기득권에 얹혀있는 셈입니다. 정책은 6공 당시보다 발전된 것이 거의 없어요. 당정 협의과정에서 노동통제를 완화하자는 노동부장관의 노력이 후퇴하고 금융실명제도 후퇴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기본적으로 개혁국면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현 정부내의 공통된 철학적 인식이 없는듯 합니다. 내부적으로 구여권이라는 큰 장벽을 극복하면 정치의 본질이 바뀌는 것이지만 아직은 본질이 바뀌었다고 볼수 없습니다.
▲백 의원=역사인식이 결여됐다는 이 의원의 얘기는 잘못된 지적입니다. 지금의 개혁은 역사의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역사의식이란 해방이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한다는 결단,끊지 않으면 민족의 생존이 어렵다는 결단입니다. 새 정부는 대선과정에서 이같은 결단을 앞세움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받아 탄생했습니다.
정치사적으로 자유당정권이래 정권은 반공이데올로기 속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하지않았기에 진정한 변화와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역사의식이 자라온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새 정부는 이같은 역사인식에서 제2의 건국이라는 정열을 가지고 누적된 부정부패를 고치고 있는 중입니다.
▲장 교수=돈을 안받겠다는 개인적 결단도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정당정치 전반에 걸친 깨끗한 정치가 구현돼야 하지 않습니까.
▲백 의원=지금 정치특위에서 하고 있는 일련의 정치개혁입법이 바로 돈안드는 정치의 제도화입니다.
○안기부 예산공개
▲이 의원=관건은 민주주의론과 거리가 먼 관행입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네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정치자금 문제로 대통령이 한푼 안받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정권유지를 위한 비밀비용에 쓰이는 안기부 예산을 공개하지 않는한 깨끗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믿기는 힘듭니다. 둘째는 국회와 정당 운영문제로 14대 들어서도 국회는 여당이 필요할때만 열립니다. 국회에서 할 일을 청와대에서 다 해버립니다. 세번째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실시로 기초부터 민주주의를 배우고 익히게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국민의 의식수준에 맞게 국회 회의를 생중계하는 등 국민들에게 정치를 공개해 참여와 감시를 할 수 있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 교수=개혁초기 김 대통령이 과거와의 단절작업을 벌일 때만해도 「역시 YS」라는 평가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속한 서울대 교수사회에서도 요즘은 냉소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보복은 안하겠다면서 결과적으로는 반YS였던 사람들만 사정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구요.
○식자층 의식개혁
▲백 의원=사정은 적당히 끝내는게 아닙니다. 아직 미완인 상태입니다. 최근 평화의 댐·율곡비리·금융비리 및 불로소득층이 관련된 슬롯머신­카지노수사도 결코 어떤 개인을 목표로 한것은 아닙니다. 우리사회가 엄청난 부패구조다 보니 권력자 행세하던 사람들이 안걸린 곳이 없어 공교롭게 그물에 걸려든 것일 뿐입니다. 냉소주의도 개혁의 대상이에요. 식자층의 의식개혁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 의원=우리사회의 상징적 파워엘리트는 사정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밑의 관리직은 숫자가 너무 많아 이들의 부패를 제거하는 제도가 나오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개혁은 실패합니다. 이들의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는 제도가 금융실명제이고 권력남용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지방자치제며 의회를 활성화시켜 정치권력을 견제해야 합니다. 이 세가지에 대한 확실한 의견을 안밝히니 개혁에 더 진전이 없는 것입니다.
김 대통령 집권중 관료적 권위주의 풍토가 많이 없어져서 향후 합리적 보수 대 합리적 개혁세력으로의 양분구조가 나타나야 한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야권·언론도 책임
▲장 교수=개혁추구 과정에서는 반드시 건전한 비판세력이 필요합니다. 가장 비극적인 현상이 과거처럼 학생들이 비판기능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야권도 책임이 있습니다. 야권이 활발히 움직이면 학생이 안나옵니다. 언론도 비판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야 합니다. 이제 김 대통령이 이니셔티브를 쥐었으면 냉소적 시각이거나 성급한 판단보다는 한번 기대를 걸어보는게 좋을 듯합니다.
▲백 의원=학생들의 폭력적 의사표현은 비판해야하는게 우리 책임입니다. 그러나 학생 전체가 용공이라는 식으로 배제시켜서는 곤란하고 교육과 대화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개혁에 동참토록 정치권이 적극적인 설득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학생은 포용대상
▲이 의원=학생들을 용공으로 모는 식의 통치이데올로기는 이제 전환돼야 합니다. 용공적 사고를 갖는 학생운동 지도부는 사회주의가 다 망해버린 상황에서 아무런 지도력을 갖지 못하는게 현실입니다.
30년간 고정돼버린 공안관료들의 의식전환 없이는 개혁은 커녕 체제유지도 어려울 것입니다.
▲장 교수=백 의원은 식자층의 의식전환을,이 의원은 기득권층의 사고혁신을 선결과제로 보는 셈이군요. 앞으로 지도체제의 민주적 재편이 중요한 과제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통일원장관의 경우 정책방향이 옳은 것 같은데 사회주의자라는 지도층내의 비판도 들리듯이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실행에 옮겨야 할 세력이 사보타지를 할 가능성이 많은 것 같습니다. 즉 개혁추진을 국민들이 흔들어 놓는게 아니라 기득권내 수구세력이 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백 의원=무슨 뜻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권과 야권이 힘을 합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과거 반독재투쟁 시절에는 학생들이 보완세력을 담당했으나 이제 정치권이 힘을 합쳐야 할 때입니다.
▲장 교수=현재 추진중인 개혁의 결과가 어떻게 신명하는 사회로 연결되겠습니까.
▲백 의원=김 대통령이 제일 원하는 사회가 신명하는 사회입니다. 향후 원상회복 차원의 법집행과 의식개혁·제도개혁이 동시에 진행돼 이같은 사회를 이뤄낼 것입니다. 특히 의식개혁은 애국·애민·애족운동의 3단계로 추진돼야 합니다. 과거 애국은 정치인들이 국민 이름을 도용해 자기행동을 합리화했던 사례가 많으나 이제 진정한 공동체의식이 싹터야 합니다. 다음 국민화합적 차원에서 애족운동이,순수한 민족적 감정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애족운동이 계속된다면 반드시 신명하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국민이 주체돼야
▲이 의원=그간 신명나는 정치가 되지 못했던 것은 국민들을 정치의 구경꾼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늘상 유세나 홍보물 배부의 대상에 머무르는 한 냉소주의와 불신만 낳게 됩니다. 국민이 참여의 주체가 돼야 책임과 건설적 비판이 생겨납니다. 특히 지방자치제의 완전한 실현만이 국민을 신명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정치의 즐거움을 알게해야 합니다. 각종 집회참여를 유도해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게 하고 참여하는 주민이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는 방향으로 정치문화가 개선돼야 합니다.
▲장 교수=저는 경제성장 신화에서 탈피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를 하면 경제성장이 안된다는 도식적 틀을 깨뜨리고 민주주의와 경제적 혜택이 동시 추구돼야 합니다. 이와함께 노사관계·교육 등 사회전분야에 공평성이 확립돼야 합니다.
▲백 의원=민주주의가 잘되면 경제도 잘 풀리리라 봅니다.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개혁을 먹고 자랍니다. 지속적인 개혁으로 건강사회를 만든다면 이것이 바로 신명나는 사회가 아니겠습니까.<정리=오병상·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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