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은행 신용에 먹칠/제일은 뉴욕지점사건 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인사관례 깬 13년파견… 지점장 행방감춰
제일은행 뉴욕지점 안재현 전 지점장의 교포기업에 대한 불법 지급보증 사건(본지 16,17일자 8면 기사참조)의 파문이 점차 커지면서 이 사건의 성격도 명확해지고 있다.
한해 당기순이익 1천4백68억원(92년 결산)인 은행이 1백50억원(1천9백50만달러)을 대신 물어내야 할 형편이라는 것이 이 사건의 「규모」라면,실력자의 직계가 행내의 인사관례를 깨고 해외지점근무 혜택을 오래 누려오다 외국의 뱅커들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사금융 행위로 세계 금융시장의 한 복판에서 한국계 은행의 신용에 먹칠을 하고 잠적했다는 것이 이 사건의 「성격」이다.
한마디로 인사난맥·부실채권·금융인 자질 등 우리 은행들의 고질적인 현주소가 뉴욕 금융시장에서 정직하게 노출된 것이라 할수 있다.
이 사건은 현재 뉴욕주정부의 은행국과 미국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위(FRB)가 진상조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내의 금융거래 법규 위반여부는 다 따져보겠지만 안 전 지점장이 한국 금융계의 오랜 실세였던 이원조 전 의원의 직계로 행내의 인사관례를 깨고 미국에서만 13년을 근무해왔다는 「한국적」인 사실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은 대신 「미국적」인 금융풍토와도 관련이 있긴 하다.
곧 금융사고가 잦은 한국에서는 지급보증을 위한 지점장의 「도장」을 흔히 지점 차장이 보관하고 있어 서로 견제를 하고 있지만,도장을 찍는 대신 사인을 하는 미국에서는 지점장이 판단만 서면 얼마든지 지급보증서를 끊어주고 또 그것을 믿어주는 신용질서가 서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사금융」 행위는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은행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은행 62개 해외점포의 4월말 현재 대출은 2백억달러(약 16조원)인데 이의 대부분은 현지 기업이 아닌 교포들에게 나가있는 것이며 이중 건당 10만달러 이상의 부실채권은 9천9백70만달러에 이른다.<뉴욕=이장규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