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가 또 한번 개혁공방/자민당,선거제도 개정안심의 보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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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하타파 “내각철수” 등 큰 반발/여·야 모두 여론에 밀려 협상흉내만/선거구조정등 이해걸려 지연 불보듯
일본의 정치개혁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선거제도 개혁법안이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되기 어렵게 됐다. 자민당 집행부는 11일 정치개혁 관련법안을 20일로 회기가 끝나는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을 보류,계속 심의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이에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추진파는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총리에게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며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개혁추진파인 하타(우전)파는 선거제도 개혁이 좌절될 경우 미야자와내각에서 자파각료를 철수시키는 등 공세에 나설 태세다. 하타파는 상황에 따라 자민당을 뛰쳐나갈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야당도 오는 15일까지 자민당의 움직임을 지켜본뒤 미야자와내각 불심임안을 제출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등 일본정국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지금까지 선거제도 개혁에 열심인 체하던 자민당이 11일 일단 보류한다는 방침을 굳힌 것은 기본적으로 개혁의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개혁을 하더라도 자기당이 손해를 보거나 정권을 내놓으면서까지 할 의사는 없다는 것이 속마음이다. 야당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사실 자민당은 그동안 정치자금과 관련된 잇따른 스캔들이 터지면서 여론의 따가운 비판에 밀려 할수없이 응하는체 해왔다. 다나카가쿠에이(전중각영) 전 총리가 관련된 록히드사건을 비롯,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자민당 부총재를 몰락으로 몰고간 도쿄사가와 규빈(동경좌천급변)사건 등 자민당의 금권정치에 대한 비판이 워낙 거세진 때문이다. 자민당은 선거비용을 적게 들이고 2대 정당제에 의한 정권교체가 가능한 정치제도를 만들자며 선거제도를 현재의 중선거구제에서 정원 5백의석의 단순소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안을 당론으로 내놨다. 이에대해 사회당과 공명당은 비례대표제를 기본으로한 소선거구(2백의석)·비례대표(3백의석) 병용제를 내놨고,민간정치 개혁추진협의회는 이를 절충한 소선거구(3백의석)·비례대표(2백의석) 연용제를 타협안으로 제시했다. 이 안은 소선거구제를 기본으로 하되 비례대표제에선는 소선거에 패한 정당의 사표를 우선적으로 비례대표의석에 배분하는 안이다.
92년 참의원 선거결과를 토대로 시산한 결과 자민당안은 자민당이 절대의석을 차지하고 야당안은 자민당의 과반수 획득을 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일본의 여·야당은 정치부패에 대한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의식,그동안 서로 타협안을 만드는 체해왔다.
자민당은 지난달 28일 당집행부 수뇌회담을 열고 『소선거구 비례대표 연용제를 축으로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안을 만든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또 사회·공명당 등 야당도 자기네 안에서 약간 후퇴한 안을 내놓고 자민당 정치적인 공세를 폈다.
그러나 결국 11일 자민당 집행부는 단순소선구제를 양보할수는 없다며 이번 국회에서 야당과 타협,선거제도 개혁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자민당 보수파 의원들은 이제와서 『원래 정치자금규제 강화가 목적이므로 그것만 하면 된다』며 야당과의 타협을 거부한 것이다. 선거구조정은 의원 개개인의 정치생명 및 정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치제도 개혁안이 물건너간 것을 계기로 걔혁추진파와 여론의 비판이 거세져 의회 조기해산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이 불리할 것을 알면서 조기총선을 치르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자민당은 시간을 벌며 유권자들의 망각을 기다려 내년쯤 총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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