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 인물묘사 이익집단 항의 "몸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TV프로에 묘사되는 자신들의 모습에 불만을 품은 이익단체들의 항의·농성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에 못이긴 방송사들이 프로그램 내용을 수정하거나 방송을 아예 취소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이 같은 이익 집단들의 항의는 주로 『특정 집단을 묘사하면서 부정적인 변을 부각시켜 이미지를 손상시킨다』는 내용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려달라』는 요구가 대부분이다.
90년 MBC-TV 가 방송한 『춤추는 가얏고』는 국악인이란 특정집단을 소재로 한 탓인지 유난히 항의가 많았던 프로. 이 드라마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국악인이 밤무대에 나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국악인들이 이 부분에 대해 『전체 국악인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그 동안 이 드라마에 해오던 찬조출연을 거부하는 바람에 제작진이 혼쭐났었다.
이 드라마는 또 극중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된 국악과 교수의 공연 팸플릿에 서울대학교라는 실존 대학의 이름을 박아 서울대 국악과 학생들이 MBC 정문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었다.
현재 방송중인 SBS-TV 『오 박사네 사람들』도 치과의사 협회로부터『치과의사로 등장하는 오지명의 대사와 연기가 상스럽고 경박해 치과의사의 이미지를 해친다』는 항의를 받았다.
SBS측은 치과의사 협회의 항의를 받아들여『극 전개상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지나치게 경박해 보이는 코믹성 대사와 연기를 자제한다』고 합의하고 실제 제작에서도 이를 수용해 12일 치과의사 협회로부터 「오 박사가 치과의사들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부각시켜 시청자들에게 친밀감을 갖도록 하는데 기여했다」는 취지의 감사패를 받을 예정이다.
이밖에 KBS-TV 『유머 일 번지』의「동작 그만」「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코너 등 군·기업·국회 등 특정집단을 소재로 한 코미디 프로에서는 한번 정도 해당 집단의 항의를 받아보지 않은 프로가 드물 정도다.
그러나 13일 방송예정이었던 SBS-TV『그것이 알고 싶다』(약사들의 한약 조제권을 둘러 싼 약사들과 한의사들의 공방전 배경을 다룬 프로)가 약사들의 집단 농성에 밀려 방송이 취소된 것은 지금까지의 사례들과는 그 성격이 판이해 시선을 끌고 있다.
『춤추는 가얏고』 『오 박사네 사람들』의 경우는 방송 이후에 극중 인물묘사가 문제돼 항의를 받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방송도 되기 전에 약사들이 SBS 정문 앞에서 이틀동안 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취소된 것. 지금까지 TV프로가 정권의 압력에 의해 방송이 취소된 적은 있지만 특정 집단의 항의에 부닥쳐 취소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SBS측은 이번 방송취소 결정까지 약사들이「방송취소」를 내걸고 항의하는가 하면 한의대생 부모들이 「방송강행」을 요구하며 번갈아 정문 앞에 몰려와 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연일 간부회의를 소집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 했으나 결국은 『안주고 안 받는다』는 안전운행 쪽으로 의견일치를 본 것.
방송가에서는 SBS측의 결정에 대해 『약사와 한의사간에 워낙 첨예한 이해 관계가 걸려있는 문제라 나서기 꺼린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방송도 되기 전에 자신들의 이해 관계 때문에 집단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무력하게 굴복하는 모습은 집단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한편 극중의 인물묘사에 대한 특정집단의 항의에 대해 『춤추는 가얏고』의 연출자인 장수봉 PD는『드라마에서 특정직업의 인물을 부정적으로 묘사했을 때는 대부분이 그 인물 개인의 성격을 그리고 있는 것이지 집단이 다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이해 관계가 걸리면 한번쯤은 항의를 하는 무분별한 집단 이기주의는 없어져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남재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