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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 2∼5%” 공식화(율곡사업 무엇이 문제인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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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 기종 도입까지 찍어야 할 도장 60대/업자·군·정 물밑고리 적발이 해결열쇠
율곡감사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관련 인물들의 예금계좌를 추적하고 있는 감사원 관계자들은 『이들이 돈세탁을 어찌나 정교하게 했는지 마치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기분』이라며 그 놀라운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군관계자와 무기중개상들의 예금계좌를 동시에 추적중인 감사원은 돈세탁에 관한한 군출신 인사들이 유치원생이라면 중개상들은 가위 프로급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거액의 자금을 각각 시차를 두고 분산입금시킨 다음 이를 다소 소액현찰로 수차례에 걸쳐 인출하는 수법으로 노련한 감사관들의 돈추적을 따돌리고 있다는 것.
○돈가방 주문제작
여기서 중개상들이 수시로 인출해가는 「소액현찰」이란 적게는 5천만원에서 1억원까지를 말한다. 또 직업상 돈세탁을 깔끔히 처리해야 하는 이들은 현금 5천만원들이(용량)와 1억원들이 007가방을 통상 주문제작해 사용하는게 오랜 관행으로 돼있다.
무기구매에는 커미션이 합법화 되어있고 무기도입 결정 전후로 광범한 로비전이 펼쳐지는게 상식이 되고있기 때문이다.
무기구매에서는 약 2%에서 최고 5%까지의 수수료(커미션)가 공식화 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중개상들은 누구를 상대로,얼마만큼의 로비자금을 뿌리고 있는가.
한때 소규모 무기중개상으로 활동하다 몇년전 업종을 바꾼 에이전트출신 P씨는 『영어실력은 물론 국제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아온 내가 왜 에이전트 업계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제서야 알게됐다』고 털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국내 10위권내에 드는 중개상들은 통상 율곡사업의 의사결정라인에 있는 실무 소령급 이상 장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이번 로비전에는 해외 무기생산업체와 국내 생산업체 모두가 뛰어들고 있다. 무기도입 과정에서 직접 결재권을 가진 단위 부서장급만도 60여명. 그래서 하나의 기종이 선정,도입되기까지는 60개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
이들을 상대로 뛰는 무기거래에서는 로비는 곧 생명이다. 물론 다른 기종과 경쟁이 없을 때도 윤활유를 쳐두어야 하지만 일단 경합이 붙으면 성패를 가름하는 로비전은 열전이 된다.
율곡로비스트(흔히 「YL」이라고 부른다)들의 로비전략은 치밀해서 마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다. 사업 실무자들에게 수표나 현금 따위를 손에 건네주는 식의 섣부른 방법은 절대 쓰지 않는다. 로비대상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감사원들의 끈질긴 추적에도 쉽사리 돈의 흐름이 포착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파이프라인 형성
YL의 약 80% 이상은 해·공군 무기중개상들과 파이프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또 해·공군 무기의 약 50% 가량은 유럽쪽 제품인데 이는 유럽의 경우 미국과는 달리 중개상들에게 거액의 로비자금을 인정해 줄 뿐 아니라 대양 및 대륙간 전투개념에 근거한 미국제보다 연안 및 종심이 짧은 유럽형 무기가 한국에 보다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해군무기의 약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무기중개상 H사의 경우 영관급 실무자들에게는 수시로 몇백만원대의 회식비를,장성급 실무자들에게는 몇천만원대의 선물(?)을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중개상들의 로비형태중 경조사를 이용하는 사례는 가장 고전적이고 안전한 방법에 속한다. 자녀유학·결혼·회갑연 등을 통째로 도맡아 치러주는 방법이 그것이다.
6공 5년동안 이들 에이전트들이 받은 공식적인 커미션(3백16억원)에 비해도 그것은 「떡값」에 지나지 않는다.
로비스트들의 표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방산 및 무기도입을 막후에서 통제·감시하고 있는 기무사 등 군수사기관들.
무기도입을 둘러싼 로비자금이 최종 정치권까지 유입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흔히 국회의원들에게 유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정치권이란 예컨대 율곡사업 계선상의 최고의사 결정기구인 청와대를 지칭할 뿐 국회나 일반 행정부처는 낄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유일한 로비대상은 국방위원장 정도.
○의원로비는 안해
무기도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뒷거래는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에만 전모가 드러나는데 이 때문에 수사대상에까지 오르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에이전트들은 통상 담당 전문변호사를 끼고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무기중개상과 거래업체들의 국방부와 정치권에 대한 로비의 비선은 그만큼 깊고 넓다.
문제는 이번 비선을 낱낱이 적발해 낼 수 있으며 그것을 얼마만큼 문제삼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로비선이 국방부 고위관계자와 청와대에까지 닿을 정도라면 그런 인물들은 군고위층이나 정치권의 막후실세에 이어지는 거물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무기로비전에는 외국의 정부나 군부까지 끼여있어 잘못하면 정부간 갈등이 일어날 소지도 없지않다.
감사원이 현직 국방책임자나 전직 대통령을 배제하고 극소수 관련자들에게 감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 것은 율곡감사의 효과를 최대화하면서 그것이 자칫 군부 자체의 동요나 외국과의 말썽으로 번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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