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사랑의 감자꽃' 백두산서 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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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백두산을 머리에 이고 있는 백무고원(백두산과 무산을 잇는 지역으로 양강도, 자강도, 함경남도에 걸친 개마고원 다음으로 넓은 고원지대)도 8월이 되면 흰 꽃의 장관이 연출된다. 바로 감자꽃이다. 흐드러지게 핀 감자꽃은 이 지역을 '감자의 메카'로 변신시키고 있다.

최근 북한은 감자에 모든 것을 걸었다. '감자 혁명'이라 할 만하다. 감자는 곧 쌀이기 때문이다. 쪄먹고, 전을 만들고, 떡을 빚고, 국수로도 만든다. 감자만 있으면 쌀이 필요없다.


감자 혁명의 진원지는 고원 북단에 있는 양강도 대홍단군이다. 식량난으로 휘청거리던 199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홍단군을 현지 시찰한 것이 계기였다. 군으로 가는 길목엔 '김정일 장군님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같은 구호와 '감자 혁명'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곳곳에 서 있다. 그런 열정은 감자 농지가 4만ha에서 18만ha로 450% 늘어나는 배경이 됐다.

그러나 씨감자가 썩어 나가면서 혁명의 발목을 잡았다. 바이러스 감염이 문제였다. 아무리 농지를 넓혀도 감염된 씨감자를 심으면 결과는 뻔했다. 해답은 무(無)바이러스 씨감자였다.

무 바이러스 씨감자를 심으면 소출이 보통 2~4배 늘어난다. 지난해 북한의 감자 생산량은 140만t(알곡으로 환산하면 40만t). 그러나 무 바이러스 씨감자로는 400만t가량의 소출을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의 식량 부족량이 연 150만t쯤 되는 점을 감안하면 무 바이러스 씨감자는 식량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 무 바이러스 씨감자는 없었다. 북한은 남한의 농업진흥청 감자연구소에서 개발한 수경재배 방식의 무 바이러스 씨감자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내색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해 한국 월드비전이 나섰다. 2000년부터 국내 감자 전문가로 자문단을 꾸려 해마다 6~7차례 방문하며 기술과 자재를 전했다. 그렇다고 북한이 처음부터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엔 지방문도 안 열어줬다. 그러나 성과가 나오자 차츰 호응했다. 대홍단군도 열었다. 드디어 7년여 만인 지난 2일 대홍단군에서 씨감자 생산 공장이 준공되는 단계까지 왔다.

이 공장에선 무 바이러스 씨감자가 연 300만 알 생산된다. 양강도와 자강도, 함경북도 등 개마고원 일대 감자 농지에 충분한 양이다. 계획대로 가동되면 2010년께 북한 전역에 무 바이러스 씨감자를 공급해 '감자를 통한 식량 자급 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 북한 민족경제협력위원회 김춘근 부회장은 "북부 고산지대에 필요한 씨감자를 보장할 수 있는 기지가 완성됐다"며 고마워했다.

농업성의 이일섭 대외사업국장은 "감자 생산이 늘어나면서 식량난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반겼다. 남북 공동 노력으로 피어난 감자꽃은 새 경협 모델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대홍단=정용수 기자

◆무(無) 바이러스 씨감자=무균 배양시설에서 생산된 씨감자로 당연히 생산단가가 비싸다. 북한에선 씨감자 10알이 쌀 1㎏과 맞먹는다. 단위 면적당 감자 생산량은 한 나라의 국력과도 종종 비교되기 때문에 '무 바이러스 씨감자'는 감자 생산에서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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