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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와 슬롯머신(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슬롯머신이 그렇게도 말썽이 많더니 기어코 사리질 운명에 처했다. 정부는 법을 고쳐 슬롯머신 업소를 전면 폐쇄키로 하고 법개정 이전이라도 신규허가나 재허가를 일절 해주지 않기로 했다. 정부는 이모저모 아무리 따져봐도 슬롯머신이 백해무익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국민의 사행심이나 조장하고,승률조작으로 폭리를 취하고,폭력배의 온상이 되고…. 그래서 도저히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는 것이다. 옳은 판단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슬롯머신은 이로울게 없다. 개인이나 나라를 위해 도움될 게 뭐 있는가. 관광객이 와서 외화나 떨구고 간다면 그런대로 두자는 소리도 나올법 하지만 이용객 거의 모두가 내국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건전한 상식으로 생각하면 전면폐쇄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이 다 도덕군자가 아니고 이 땅이 선계나 천당이 아닌 속세라는데 있는 것 같다. 속세의 인간들이란 다 오욕칠정이 있게 마련이어서 나쁜줄 뻔히 알면서도 나쁜 짓을 끊지 못한다. 백해무익한줄 알면서도 담배를 못끊고 나쁜줄 알면서도 연일 과음하는게 인생이다. 늘 꾸지람을 듣고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사치·사행·퇴폐욕구를 어쩌지 못하고 이른바 호화퇴폐업소를 더러 기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슬롯머신업소 폐쇄와 함께 룸살롱·호화유흥음식점·안마시술소 같은 것은 모두 건전화로 유도하거나 폐쇄하는 문제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찌될 것인가. 욕구는 있는데 풀 장소가 모조리 없어지면 그 욕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다행히 이 땅의 인생들이 정부의 이런 과감한 조치를 계기로 대오각성,수양을 쌓는다면 문제는없다. 그러나 과거 미국의 금주법이 실패한데서도 보듯이 인간의 욕구가 있는한 아무리 엄한 법이 단속을 해도 온갖 교묘한 욕구충족 수단이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의 사행본능을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걸 아예 없애버리는 것은 너무 단세포적 발상이 아닐까.
모든 정책은 속세의 인간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항상 유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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