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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까이 보기 멀리서 읽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80년대의 폭압적인 정치현실 앞에서 한 젊은 시인은 『매스컴은 반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절망적으로 선언한바 있다. 물론 지금의 정치상황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날의 TV문화에만큼은 이 진술이 여전치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구경거리 사회」 「미디어 사회」니 하는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수많은 유행어에서 알 수 있다시피 오늘날 우리들은 TV가 제공하는 이미지들에 거의 중독되어 살고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상매체의 폐해에 대해서는 이제 더이상 이야기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많이 논의된바 있다. TV의 경우 같은 영상매체인 영화와 비교해 보아도 금방 드러나듯 소비의 철저히 수동적인 성격이 특히 문제시된다.
최근에 나온 『TV:가까이 보기, 멀리서 읽기』는 TV를 「바보상자」로 보는 예전의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으론 오늘날의 「TV현상」을 설득력 있게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을 근본 전제로 하고 있다. TV를 일상적으로 체험하면서 성장한 젊은 문화연구자들의 글로 이루어져있는 이 책은 TV의 부정적인 측면을 과장되게 부풀리는 국외자의 관점에서 벗어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내부에 몸을 담으면서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른바 「내재적 비평」에 치중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TV연구서보다 한 단계 앞선 면모를 보인다.
구체적인 TV경험의 문화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원론적인 글에서 TV를 소재로 한 시·수필, 그리고 인기프로그램에 대한 본격적인 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의 큰 미덕이다. 단선적인 논리의 틀로 쉽게 설명될 수 있을 정도로 오늘날의 TV현상이 녹녹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흥미롭게 읽히는 글은 이유남씨(문화평론가)의 「방법 혹은 게임으로서의 <그것이 알고싶다>」이다. 이씨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그것이 알고싶다』의 색다름은 추리소설적인 방법론을 차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자칫하면 평범한 고발성의 심층취재프로에 지나지 않았을 이 프로는 추리소설적인 게임의 방식을 통해 시청자의 참여가능성을 높인 점이 평가할만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씨는 TV가 구체적인 문화실천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쌍방통행적인 소통의 가능성을 부단치 탐구해야할 것이라는 진단에도 달하고 있다.
출판모임 「현실문화연구」에서 내는 문화연구 시리즈의 두 번째 책에 해당되는 이 책은 시각이미지와 글을 결합시킨 독특한 형식으로도 주목받는다. 새로운 문화현상을 다각도로 접근한다는 이 시리즈의 취지에서 볼 때 이러한 시각적인 편집은 적절한 형식이라 수긍할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의 남용은 혹시라도 그 본래의 의도를 벗어나 결과적으로 「파편적인 이미지의 범람」이라는 현재 TV문화의 부정적 측면에 오히려 봉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2백39쪽·8천5백원. <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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