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괴 면세로 수입 → 변칙 유통 → 싼값에 수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1000만원에 수입한 금괴를 950만원에 다시 수출하는 거래가 가능할까.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손해를 보게 되지만 이런 기형적 거래가 금괴 무역에서 벌어졌다. 수출을 위해 수입한 원자재에 세금을 매기지 않지만(영세율), 수출할 때 국내 거래에서 발생한 부가가치세(10%)를 돌려주는 현행 세법을 악용한 것이다. 수출입 과정에서 50만원을 밑지지만 돌려받는 부가세(수출업체 매입가의 10%)가 커 이익이 남는 장사가 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검사 한견표)는 금괴(골드바)를 변칙 유통시켜 254억원의 부가세를 부정 환급받은 혐의(특가법상 조세포탈)로 신삼길(54.사진) 삼화저축은행 회장 겸 '골든힐21' 대표를 구속기소했다고 5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신 회장은 1999~2004년 자신이 대표로 있는 귀금속 무역업체 골든힐21을 통해 1조2000억원대의 변칙적인 금괴 무역을 해 수출할 때 매입가의 10%에 해당하는 부가세를 부당하게 챙겼다는 것이다.

골든힐21은 변칙 거래로 세금을 부정 환급받던 시기인 2003년과 2004년 정부로부터 각각 1000만불 수출탑과 2000만불 수출탑을 받았다. 검찰은 "삼화저축은행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부가세 나눠 먹기=수법은 이렇다. 외국업체-수입업체-유통업체-수출업체-외국업체로 이어지는 복잡한 금 유통 과정에 이른바 '폭탄업체'가 끼어든다.

'폭탄업체'는 원가보다 싼값에 금괴를 유통업체에 넘긴다. 이때 부가세를 내면 손해를 보지만 이를 내지 않고 잠적한다. 유통업체로 넘어간 금괴는 수출업체를 통해 원래 수입가보다 싼 가격에 수출된다. 수출업체는 국세청으로부터 '수출을 했다'는 이유로 부가세를 돌려받는다. 결국 국내에 들어온 금괴가 수입가보다 싸게 수출되지만 부가세를 환급받는 바람에 아무도 손해를 보지 않게 된다. 이 과정에서 폭탄업체는 국세청의 추적을 피해 노숙자처럼 금괴 유통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검찰 관계자는 "신 회장이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중간 유통조직을 동원해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신 회장의 회사는 처음부터 금괴 매매 차익보다 부가세 환급을 노리고 수입 단가보다 싸게 금괴를 수출해 수십억원대의 국부를 유출시켰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검찰에서 "시가보다 싼 물건을 샀을 뿐이며 정상적인 사업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골든힐21이 유통 과정의 여러 단계에 동시에 개입해 비싸게 사서 싸게 판 경우도 있다"며 "금괴 1~2t의 수입.수출 전 과정이 하루 만에 이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왜 금괴인가=금괴는 순도 99.5% 이상이다. 다양한 종류가 있으나 막대 형태의 1㎏짜리(시가 2000만원 이상)가 대표적이다. 수출입 때 영세율, 부가세 환급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거래 규모가 커 이를 악용하려는 업자들의 주된 상품이 됐다.

99~2004년 우리나라 통상 연간 금 소비량의 2~5배에 달하는 164~340t이 수입됐다 다시 수출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정부는 이 같은 금괴 불법 유통으로 국고에서 매년 5000억원가량이 부가세 부정 환급을 통해 새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금괴 판매자가 부가세를 내지 않고 잠적하는 현행 세제의 맹점을 고치기 위해 매입자가 세무서에 직접 부가세를 납부하도록 하는 '매입자 납부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신삼길 회장은=외환위기 직후인 98년 7월 자본금 1억원 규모의 귀금속업체를 설립해 5년 만에 연간 매출 4000억~5000억원 규모의 국내 굴지의 귀금속업체로 키워냈다. 2001년 신 회장이 인수에 참여한 삼화저축은행은 지난해 자산 1조원, 영업이익 632억원에 이르는 우량 저축은행이다. 지난해 1월 남자 골프단을 창단해 KPGA 상금랭킹 1, 2위 선수를 영입했다. 신 회장은 소속 선수들이 버디(1만원), 이글(10만원), 홀인원(1000만원)을 기록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적립해 불우이웃 돕기 성금에 내기도 했다.

정효식 기자

◆영세율(零稅率)과 부가세 환급=현행 세법상 수출 진흥을 위해 수출상품과 그 원자재에 대해 '0' 세율을 적용한다. 수출할 때 신용장과 같은 수출입증 서류를 제출하면 국세청에서 유통 과정에 매겨진 부가세 10% 환급해 주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