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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부서/“잘해야 본전” 몸조심(공무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금전로비 옛말… 업계도 “힘든다”/새정부후 집단민원 급증
공무원과 민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공무원들이 처리하는 업무 그 자체를 엄밀히 따지면 국민들의 생활향상과 행정불편해소를 위한 민원해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이라면 민원처리를 전담하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민원으로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얘기도 그래서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사정바람에 더욱 각별한 몸조심을 할 수 밖에 없다.
민원에는 공장설립 등 정상적인 업무관련 민원도 있지만 해결이 껄끄러운 청탁성·집단성 민원도 많다.
특히 집단민원은 잘못 다뤘다 하면 벌집을 건드린 것과 다름없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몇년전의 일이다. 환경처의 한 간부가 지방환경청에서 단속책임자로 있을때 인근 공단내 전자업체들을 검찰에 모두 고발했다.
전자부품 납땜작업때 방지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죄명을 함께 첨부했다.
그러나 업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상공회의소 등 힘깨나 쓰는 지역 세력들과 심지어 공단내 일본계 회사를 두둔하는 일본 대사관의 항의성 압력까지 밀어닥쳐 혹떼려다 혹붙인 꼴이 됐다.
뜻밖의 집단민원으로 궁지에 몰린 그 간부는 기지를 발휘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납성분이 인근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수치로 계산한 「주민피해론」을 내세워 상대방의 민원을 잠재웠고 이 방법은 환경처의 고전으로 민원처리의 귀감이 되고 있다.
집단민원에 관한한 보사부를 빼놓을 수 없다.
의약·식품 등 각종 인허가 업무와 관련,업계는 물론 각종 이익단체들이 각자 입맛에 맞는 굵직한 민원을 끊임없이 들이미는 바람에 담당 공무원이 이들을 상대로 설득·해명하랴,교통정리하랴 진땀을 쏟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특히 금전공세(?)를 앞세운 로비가 많아 종종 구설수에 올랐으나 요즘은 사정이 1백80도 달라졌다. 공무원들 처신이 예전같지 않자 업계에서는 『일하기 힘들어졌다』는 푸념섞인(?)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내무부에 쏟아지는 민원들은 다양하기 이를데 없다. 최근 「민원 1회방문제」를 실시한 이후 억지성 민원이나 번지수를 잘못찾은 민원도 찾아들고 있다.
채무관계 등 민사사항·입시관련 민원에서부터 가출부인을 찾아달라는 진정에 이르기까지 내무부 소관이 아닌 민원들도 끼여있어 직원들이 진땀을 뺀다.
민원의 절대량도 크게 늘어났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지난달까지 두달간 2백3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백7건보다 2배이상 늘어난 것으로 내무부는 집계했다.
민원인들이 단골로 몰려가는 서울시의 민원처리 노하우는 관가주변에서는 정평이 나있다.
과거 재개발사업 등 개발과정에서 써먹던 「공권력을 이용한 밀어붙이기」 「일선 행정력을 동원한 각개격파」 등의 방법에서 벗어나 「대화·협상」 「회유」 「진빼기」 등 새시대에 맞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구인·구직 민원처리방식을 개선해 호응을 얻는 등 노동부처럼 아이디어 개발로 한몫 보는 부서도 있다.
구인난을 겪는 회사와 구직자가 직접 만나 회사소개,현지 취업상담 등을 통해 취업이 이뤄지도록 노동부가 다리를 놓는 「만남의 날」 행사개최가 그것이다.
전교조해직교사 복직문제는 교육계의 최대 집단민원으로 꼽힌다.
교육부는 해묵은 민원을 풀기위해 장관이 전교조위원장이 지난달 8일 첫대면을 갖는 등 한발짝씩 접근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김기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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