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왜 정전사고에 치명적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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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04면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일은 실리콘으로 만든 웨이퍼로 판화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설계도를 사진을 찍듯이 웨이퍼 위에 새긴 뒤 가스나 화학약품을 이용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깎아 나가게 된다. 이렇게 새겨진 회로를 알루미늄 전선으로 연결하면 칩이 완성된다. 이 칩을 잘라내 외부와 연결되는 전선을 붙여 완성한다.

문제는 이 작업이 매우 정밀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는 50나노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웨이퍼 위에 새기는 회로 폭이 50나노미터(nm)라는 뜻이다. 1nm는 10억분의 1m이니 50nm는 머리카락 굵기의 5000분의 1 정도다. 원자가 0.1nm다. 이보다 큰 분자가 10nm 정도니 메모리 반도체의 회로가 얼마나 가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같은 작업을 하는 반도체 공장인 만큼 최적의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기 안에 떠다니는 먼지 한 톨 때문에 불량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은 보통 ‘클래스 1’을 유지한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30㎝인 공간에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 크기인 먼지 한 톨이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포항제철소 700배 넓이에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떨어져 있는 정도를 상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깨끗한 작업 공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다양한 제조 공정마다 필요한 조건도 제각각이다. 반도체에 얇은 막을 입히는 증착 공정의 경우 ‘챔버’라고 불리는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고온의 가스를 불어넣어야 한다. 절연막을 씌우는 산화 공정처럼 800~1200도의 열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반도체는 전기적으로도 민감하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전류가 가해질 경우 회로가 끊어질 수 있다. 심지어 손을 비비는 등 일상 생활 중 발생하는 정전기에도 큰 충격을 받는다. 컴퓨터 전원을 억지로 차단하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 오류가 생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이번 정전사고로 막대한 피해를 봤을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의 분석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사고 때 청정설비가 오염됐거나 정전 과정에서 웨이퍼에 전기적 충격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라인에 있던 웨이퍼를 모두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생산에 들어간다면 40~60일 동안 새 칩이 나오지 않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비상전력을 공급해 안전하게 전원을 차단했고 일하던 직원들이 신속히 밖으로 나와 생산라인 오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조기 정상화를 자신했다. 그러나 100여 개에 달하는 반도체 생산 공정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이번 정전으로 인한 웨이퍼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1~2주 정도 지나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이 삼성전자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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