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선진국 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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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27면

올해는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은 뒤 만 10년이 되는 해다. 10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마치 악몽을 꾼 것처럼 잊어버리고 싶어진다. 동남아에서 시작한 외환위기가 금융위기로, 그리고 종국에는 경제위기로 치달으면서 쓰나미처럼 우리 경제를 덮쳤다. 기업 도산과 실업대란이 일어나고 길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났다. 국가가 부도 사태에 직면하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고, 국민은 금 모으기 운동으로 결혼반지까지 빼서 이 운동에 참여했다.

IMF가 구제금융을 주면서 우리에게 요구한 4대 부문 개혁이 진행됐다. 즉 공공부문에서는 작은 정부와 공기업의 민영화, 금융부문에선 국제기준에 맞는 금융개혁, 기업부문에선 경영의 투명성, 노동부문에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요구하여 이에 따라 개혁조치들이 이루어져 갔다. 그러나 2년 뒤 IMF로부터 빌린 돈을 갚아버리자 개혁의 속도는 느려지고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역행하는 조치들이 개혁의 이름으로 취해지고 있지 않은가.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겪은 값진 교훈들이 잊혀지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그 당시의 경제위기 원인에 대해 많은 지적들이 있었다. 그중에 서구의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동남아의 경제위기는 크로니 캐피털리즘(Crony Capitalism) 즉 정실자본주의나 부패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한 대목을 상기시키고 싶다. 한 나라의 경제수치가 아무리 좋아지더라도 국민의 윤리의식이나 도덕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결국 그 경제는 허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 즉 정직, 근검, 절약,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투철한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꽃피울 수 있다고 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메이슨대의 뷰캐넌 교수는 이런 윤리 도덕을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 또는 도덕적 자산(Moral Asset)이라고 했고 이것이 축적된 나라일수록 선진국이라고 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선진국이 되기 위해 국민소득만 높아진다고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올 연말이면 아마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는 되리라고 한다. 1995년에 1만 달러를 넘은 이래 12년이 걸려서야 2만 달러 고지를 넘게 된다.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던 싱가포르가 5년 만에 넘었던 것을 우리는 10년이 지나서야, 그것도 환율 덕분으로 2만 달러는 넘어서겠지만 우리 경제사회의 발전이 선진국 수준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그중에서도 선진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라고 할 우리의 도덕적 수준은 나아진 것이 없는 것 같다.

필자가 미국에 유학하는 동안 그곳의 어떤 점이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힘인가를 찾아보려고 노력하였다. 봄방학 때 카리브해에 있는 푸에르토리코로 갔다가 급성 담석증에 걸려 찰스 타운으로 가는 비행 도중 애틀랜타에 급히 내려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겪은 미국 사람들의 환자에 대한 배려는 감동적이었다. 그중 한 가지는 휠체어에 실려 막 출발하는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갔을 때 마침 좌석이 만석이었다. 그때 누구 한 사람 내려야겠는데 자원자는 손들어 보라고 하니까 전원이 손을 드는 것이 아닌가. 이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만약 김포공항에서 부산발 비행기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모두가 손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속도로상에서 119 구급차가 지나가면서 비켜달라고 경고를 해도 버젓이 나 몰라라 하고 그냥 달리는 차들이 얼마나 많은가. 병원 환자를 인질로 불법 파업을 하며 진료 방해를 하는 사례, 탈레반에 잡혀 있는 인질을 반미시위의 구실로 삼는 단체들을 바라보면서 언제 우리가 선진국이 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또한 바다이야기 사건 등 각종 부정 사례가 계속 터지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이처럼 도덕적 자산이 부족한 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고 선진국이 되기를 기대하는 일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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