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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랠프 네이더, 짝퉁과 '10년 전쟁'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호 06면

'중국판 랠프 네이더(미국의 소비자 운동가).'

검은 선글라스가 인상적인 왕하이(王海·34·사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짝퉁 천국'중국에서 가짜 상품 적발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그가 독특한 인생 행로를 걷게 된 계기는 1995년 2월. 서점에서 『소비자권익 보호법』이라는 책과 마주친 게 인연이 됐다. '소비자가 가짜 상품을 샀을 때는 두 배 가격의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왕은 먼저 베이징의 한 상점에서 일본 소니 제품을 모방한 가짜 이어폰 12개를 1020위안을 주고 산 뒤 소비자권익 보호법을 근거로 두 배의 변상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할 일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왕하이는 "흩어진 1000명의 소비자가 50명 직원의 회사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통감하고 스스로 짝퉁 적발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차렸다. "다하이(大海) 상무고문유한공사"다. 98년엔 중국을 찾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왕하이를 초청해 "소비자 보호 투쟁에 앞장서 달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왕으로부터 적발당하는 가짜 제품 생산업체들이 잠자코 당하고만 있을 리 없었다. 왕의 목숨에 20만 위안을 걸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특히 99년 짝퉁 전선을 생산하고 있다고 왕하이가 폭로한 진청(津成) 회사와의 싸움은 왕에게도 큰 타격을 주었다. 진청은 왕하이로부터 공격을 받자 랴오닝성의 한 언론에 헛소문을 퍼뜨렸다. 왕하이가 가짜 상품을 생산하는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역시 가짜를 만드는 그 업체의 경쟁 회사 제품을 적발했다는 것이었다. 여론은 들끓었다. 왕하이가 과연 소비자 운동가인가, 아니면 희대의 협잡꾼인가 하는 논쟁이 거세졌다. 이른바 '왕하이 현상'이다.

조사까지 받게 된 왕은 화가 폭발해 물건을 부수는 과격 행동을 보여, 한때 정신병자로 몰리기도 했다. 집념의 왕하이가 진청과의 싸움에 투자한 시간은 장장 4년. 마침내 진청의 짝퉁 전선 증거를 명확하게 찾아내 진청의 간부를 감옥으로 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같은 왕하이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 짝퉁은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지난해 왕하이는 베이징 공상국에 자신의 서명이 위조됐다고 신고했다. 소비자권익 보호를 기치로 내건 웹사이트 왕하이닷컴이 자신의 서명을 위조해 회사를 등록했으며, 왕하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왕하이가 운영하는 웹사이트는 왕하이닷넷이다. 가짜와의 힘겨운 전쟁을 펼치는 왕하이의 노력이 한강에 돌 던지기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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