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정부 금괴매각 논란/2조마르크 통일비용 조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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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장부가­시세차액으로 재원충당 찬/재정정책 신뢰먹칠… 인플레우려 반
총 2조마르크(약1천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독일 통일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보유하고 있는 금괴를 매각하자는 주장이 제기돼 이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분데스방크가 금고에 보관하고 있는 금괴는 모두 1억1천9백만온스로 약 3천7백t에 달한다. 이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양이다.
이 금괴의 장부상 가격은 수년전부터 1백70억마르크로 고정돼 있다. 그러나 이를 현재의 국제 금시세인 온스당 3백67달러로 계산하고 이를 다시 1달러=1.6마르크의 현 환율을 적용할 경우 약 7백억마르크에 달하게 된다. 바로 이 차액을 통일비용에 쓰자는 것이 매각론자들의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을 제기한 인물은 재정전문가인 다름슈타트대 베르트 뤼룹교수. 그는 금괴를 매각,현시세와 장부상의 가격차에서 발생하는 5백10억마르크를 분데스방크수입으로 재무부에 넘겨,이를 통일비용에 사용하라고 최근 분데스방크에 권고했다.
이 돈으로 구동독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신탁관리청과 채무청산기금의 막대한 빚에 대한 이자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뤼룹교수는 금괴를 매각하기엔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라고 말하고 앞으로는 금괴를 매각할래야 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조만간 유럽중앙은행이 발족하게 되면 이 금괴를 유럽중앙은행에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금이 구동독의 도로나 정비된 기업이라는 형태로 보관되는 것이 유럽중앙은행 금고에 보관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헤르베르트 에렌베르크 전노동장관도 동조하고 나섰다. 그는 구동독의 기간시설을 개선하고 실업을 줄이기 위한 1천억마르크 투자안을 제안하면서 이를 위한 재원의 일부를 「분데스방크의 지하금고에서 낮잠자고 있는」금괴로 충당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헬무트 슐레징거 분데스방크 총재나 테오 바이겔 재무장관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금괴를 매각해 통일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돈을 찍어 국가예산에 사용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 이들의 반대요지다. 즉 통화량이 팽창,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더욱 우려하고 있는 것은 금괴의 매각으로 통일비용을 충당할 경우 발생하는 독일의 재정정책에 대한 국내외의 신뢰상실이다.
이렇게되면 곧바로 독일 마르크화가 약세를 면치 못하게 되고 천문학적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독일정부는 그만큼 이자를 많이 내야 하는 부담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유럽의 기축통화인 마르크화의 약세는 또한 국제금융시장의 대혼란을 야기하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다.
이처럼 「좋은 시절」사두었던 금을 「나쁜 시절」이 돼서도 마음놓고 사용할수 없게 된 현실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는 「금의 때늦은 저주」라고 표현하고 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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