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땐 '지지형 문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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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에서 여권은 단 한번의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맞설 단일화 경쟁에서 노무현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4.6%포인트 차로 정몽준 후보를 제쳐 단일 후보가 됐다. 최근 한나라당 여론조사 문항에서 논란의 핵심인 '선호도냐, 지지도냐'는 5년 전엔 쟁점이 아니었다. 당시엔 '누구를 지지하느냐'의 지지도 문항으로 일찌감치 결론이 났었다.

그때의 쟁점은 '본선 경쟁력'이었다. 노 후보가 '노무현과 정몽준 중에 누구를 더 지지하느냐'는 단순 지지도 문항을 고집했지만 정몽준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 겨뤄 누가 경쟁력이 있느냐'는 대목을 넣고 싶어했다. 이회창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선 정 후보가 상대적으로 강했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최종 문항은 "이회창 후보와 견주어 경쟁력 있는 단일 후보로 노무현.정몽준 중 누구를 지지하십니까"였다.

양측의 입장이 교묘하게 절충된 안이었다. 그러나 노 후보가 승리하자 "응답자가 주목하는 조사원의 목소리는 결국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는 마지막 대목이기 때문에 지지자의 충성도가 높은 노 후보 측에 유리한 설문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당시 정 후보 측 협상대리인이던 여론조사 전문가 김행씨는 "정 후보 측이 트집을 잡는 것처럼 비칠 정도로 협상이 늦춰지고, 여론조사 시기가 뒤로 밀리며 승부가 뒤집어진 것"이라고 했다.

5년 전 여론조사의 노무현-정몽준 논란이 또 다시 이명박-박근혜 논란으로 나타나는 것은 후보 결정에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한국적 선거 풍토'의 특이한 현상이기도 하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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