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특사교환제안 배경과 정부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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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존 틀」깬 대화제의 긍정적/과거정부와 차별성 인정은 큰진전/핵압력에 시간벌기용 속셈 분석도
북한 강성산총리가 25일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접촉을 갖자는 우리측 제의에 대해 최고 당국자들이 임명하는 부총리급 특사를 교환하자고 제의해온 것은 일종의 변형된 수정제의로 일단 김영삼정부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긍정적인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그동안 소극적으로 나왔던 정상회담개최문제를 명백하게 언급하고 이를 위해 최고위급 당국자간의 특사를 교환하자고 주장한 것은 전례없이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어서 북한의 대화제의가 상당히 적극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강 총리가 이날 서한에서 『북과 남은 이제 더이상 지난날의 곡절 많은 대화의 길을 걸어서는 안되며 새출발을 하여야 할 것』이라고 못박은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겠다.
○“새출발하자” 강조
이와함께 서한이 『당국자들 사이에는 화합과 통일을 위한 길에서 실천적으로 의의있는 전진을 이룩하지 못했고 대화와 접촉은 결국 군부독재의 유지에 이용되었다』면서 『귀측에서 새정권의 출범과 함께 과거와는 달리 민족의 이익을 중시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한 점은 문민정부와 기존 정부와의 차별성을 분명히 한 긍정적 신호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측의 이번 제의는 이같이 적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우리측 황인성총리가 대북서한에서 밝힌 회담의 틀과 내용을 모두 깼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남북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먼저 북한은 그동안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릴 때마다 고위급회담이 잘 되면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해왔지만 구두선에 그쳐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번 제의도 실질적인 토의와 협의절차없이 특사를 파견하겠다는 것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겨냥한 것이라기 보다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국제사회 과시용
다음달 2일 북미간의 고위급회담이 열린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북한이 제의한 회담의 시점과 형식은 다분히 적극 대화를 모색하는 제스처를 국제사회에 보이겠다는 속뜻이 깔려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북한의 제의는 핵문제 등 남북의 현안에 대해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겉으로 표명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임박하고 있는 북한핵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에 대응하는 시간벌기 의도가 숨겨져 있을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북측의 이번 제안은 남북의 최대현안인 핵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강 총리는 서한에서 다만 핵문제와 관련,「특사의 교환은 북남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의 이행에서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고」라고만 언급했을 뿐이며 그밖에 「귀측에서 협의하려는 문제」라는 식으로 핵문제를 의도적으로 피해가는 인상이다.
○내용 다각적 검토
때문에 북한측은 남측이 매력을 느낄 것으로 생각되는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강하게 내비쳐 남측을 회담에 끌어들여 핵문제로 인한 압력에서 숨을 돌리자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분석들이다.
북한측의 이같은 제의에 대해 정부는 편지내용을 다각적으로 검토중인데 일단은 이를 거절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자칫하면 대화거절의 비난을 뒤집어쓸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인후 대응책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측은 북한이 시간벌기용으로 정상회담을 이용하는 인상이 강한만큼 정상회담 문제에 대해서는 「차분하고 냉정하게」대처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며 어디까지나 당분간은 핵문제에 집중할 생각이다. 아무튼 북측이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고 정부도 굳이 이를 거절할 생각은 없어 금년초부터 거의 5개월간 중단됐던 남북대화는 어떤 형태로든 재개되게 됐다.<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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