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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밖에서 본 한반도는 불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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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밖에서 보는 한반도는 자못 불안하다. 미국 및 기타 강대국들은 북한 핵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이러한 위기감이 없는 것 같다.

1994년 11월 필자는 포린 어페어스지에 북한이 핵무장한다면 이는 한국의 '전략적 악몽'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늘 이 현실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그러한 긴박감이 없다. 미국은 핵무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범세계적 연대를 구축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와 무관하게 대북관계를 진행하고 있다. 이 상반된 추세 간에 벌어지고 있는 격차가 한.미관계를 어렵게 하는 근본원인이다.

*** 한.미동맹 틈새가 벌어진 까닭

돌이켜 보건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국은 북한과 이산가족, 경제 및 체육교류를 확대해 왔으나 보다 중요한 남북 평화 과정을 아직도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다. '6.15 선언'에도 안보문제에 대한 합의는 결여되었다. 이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한의 재래식무기가 대량파괴무기와 함께 남한과 지역안정을 크게 위협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 후 남북 간에는 두차례의 서해교전이 있었다.

2002년 10월 미 국무부의 켈리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측은 당시 동결된 영변 핵시설 이외의 고농축 우라늄시설 보유를 시인했으니 이는 91년 남북 비핵화 선언을 포함한 모든 국제협약을 위반한 것이다. 2003년 8월 제1차 6자회담 이후 북한은 미국이 적대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억지력으로서 핵무기를 고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핵무기 개발과 동시에 북한은 세계 제4위의 재래식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한국은 북한과 평화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2003년 8월 실시한 '퓨(Pew) 연구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미국이 북한보다 더 위험하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한반도 상황을 우려하는 인사들은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만약 북한이 핵무장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미국보다도 한국을 더 위협한다. 북한이 기어코 핵무기 보유를 기정 사실화한다면 우리의 자주국방 계획도 실현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좋든 싫든 미국의 핵우산에 더욱 의존해야 하고 더 많은 국방비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도 미국은 주한미군을 전방에서 한강 이남지역으로 재배치할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처럼 반(反)테러와 반대량파괴무기 및 지역안정에 대한 미국의 범세계전략과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를 우선시하는 한국의 국지전략 간에 격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국이 이라크에 3천여명의 병력을 파견하기로 한 것은 한.미동맹 유지를 위해서도 적절한 조치다. 그러나 그 결정과정에서 나타낸 주저함과 끝없는 정쟁이 남긴 대외 이미지는 미국의 신뢰를 회복시키기에는 미흡했다. 국제정치에서는 이미지가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경제를 재건하고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일도 미국의 신인도를 획득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 재무부는 잘못을 저지른 자를 돕는 것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조장하므로 대한국 긴급금융을 반대했으나 클린턴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안보임무를 내세운 국방부의 의견을 중시해 신속한 지원을 결정했던 것이다.

*** 환란 먼저 겪었던 태국을 보라

한국보다 먼저 환란을 겪었지만 미국의 홀대를 당했던 태국의 탁신 시나왓 총리는 반테러전에서 미국과 민첩하게 협조함으로써 동남아에서 최고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정보교류에서도 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대우를 받고 있다. 무임승차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현세계에서 우리의 살 길은 한.미동맹을 재건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는 것 같다. 지금이야말로 정책당국은 전략적 사고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安秉俊 일본 정책연구대학원 초빙교수

◆ 약력:연세대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박사, 미국 웨스턴 일리노이대 교수, 미시간대.캘리포니아대(버클리).조지 워싱턴대.존스 홉킨스대(SAIS) 객원교수, 연세대 교수(1978~2001), 대한민국학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