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사랑, 돌리지 않고 직접 건드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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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39)씨의 소설 세계는 기존의 관습과 통념을 거스르는 낯선 소설 문법을 유지해 왔다.

지난해 그녀에게 한국일보 문학상을 안긴 연작 장편소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에 대해 문학평론가 권오룡씨는 "유니크한 목소리와 화법으로 낯설고 거칠게 다가와 독자에게 읽어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읽는다면 수용의 자세로 읽을 것이냐 거부의 자세로 읽을 것이냐 하는 문제들 사이에서 근원적인 양자택일을 요구한다"고 평했다.

배씨는 새 장편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에서도 여전히 낯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이전 작품들보다 도를 더하고 있다.

배씨는 소설 뒷부분 작가의 말에서 '읽고 들은 몇 권의 책과 소소한 음악에 관한 짧고 단조로운 에세이를 쓰고 싶었으나 소설의 도움을 받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장르보다 특별히 덜 좋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며, 달콤한 멜로디에 의존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용 바이올린 음악이 어느 순간 참을 수 없어지는 것처럼 선명한 스토리에 의존해 진행되는 글을 가능한 멀리 두고자 했다'는 취지를 밝혔다.

소설은 배씨의 '취지'에 충실하다.

베른하르트 숄링크의 장편소설 '책 읽어주는 사람'과 야콥 하인의 미국생활 체험기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기' 같은 책들에 대한 '짧고 단조로운 평'이나 슈베르트의 예술과 삶에 대한 언급,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으로 시작하는 예술과 도덕률 사이의 경계에 대한 단상 등은 에세이 같은 모습들이다.

반면 '에세이스트…'를 소설로 읽게 하는 요소는 '나'와 M이라는 중성적인 독일인 간의 사랑이야기다.

작가 자신의 분신이라는 느낌을 물씬 풍기는 소설 속 주인공 나는 독일에 체류하게 된 한국 작가다. 나는 독일어 개인 교사로 만난 M과 쉽게 사랑에 빠져 만난 지 한달 만에 방을 합친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한국에 가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을 몇 가지 안고 있고, 신변 정리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예측할 수 없다. 나의 한국행을 변경할 수 없다는 사실에 상심한 M은 어느 날 나의 또 다른 독일어 선생인 에리히와 순전히 육체적인 호기심 때문에 하룻밤을 함께 보낸 적이 있다는 과거를 나에게 고백한다. 충격을 받은 나는 당장 짐을 챙겨 M의 방에서 떠나오고, M은 뒤늦게 나의 방을 찾아와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지만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자 밤새 현관 밖에서 떨며 기다린 끝에 급성 무릎관절 이상이 생겨 한달 가량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는 그것으로 파국을 맞는다.

나와 M의 사연은 장편소설의 스토리로 삼기에는 빈약하다. 배씨의 관심은 선명한 스토리 전달에 있지 않다.

배씨는 "쉽게 부정되고 그 정의는 항상 애매모호함 속에 갇혀 있고 천박하고 상스러우며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우며 변명을 좋아하고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끈질기게 발언의 기회를 노리면서 모양새를 망가뜨리고…새끼 밴 암컷보다 더 배타적인"(1백13쪽) 사랑이라는 관념을 스토리를 통해 우회하지 않고 직접 건드린다.

사랑을 위협하는 두 가지는 죽음과 상대방에 대한 오해일 것이다. 연인 사이의 완벽한 이해의 방편으로 음악이 거론된다. 음악은 어느 순간 전부를 이해할 수 없다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지, 점차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이라는 의미에서 죽음도 마찬가지다. 나는 M에게서 언어를 배우는 대신 음악을 배웠어야만 했다고 후회한다.

M을 그리워하게 된 나는 또 다른 M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수미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지만 수미는 M과는 달리 수천 수만의 군중 중 한 명일 뿐이다. 미디어와 시장이 합작한 현대의 소비 사이클 속에서 불특정 다수로 전락하지 않고 문화적 단독자로 서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대목은 탁월하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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