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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프로스포츠 사업 연봉몸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미국 프로스포츠는 사업이 하향 길로 접어들었다.
휘청거리는 미국경제를 비웃듯 상승곡선을 그렸던 미국 프로스포츠는 천장부지로 치솟는 선수들의 연봉으로 인해 급기야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각 구단은 선수 연봉을 수입예산에 포함, 중계료 및 입장권 가격을 인상해 결국 팬들과 방송국의 외면을 받기에 이르렀다.
프로야구의 경우 지난해 평균 연봉은 1백만달러로 10년 전인 83년에 비해 무려 2백75%의 증가율을 보였다.
29년 프로야구선수의 평균연봉은 7천5백31달러로 당시 1천4백28달러를 받은 일반 근로자 평균 연봉의 5.3배에 달했다.
1년 후인 30년에 홈런왕 베이브루스가 8만달러의 최고 연봉을 기록했는데 당시 후버 대통령보다 5천달러나 많은 액수였다.
루스는 후버 대통령보다 연봉이 많은데 대해 『나는 그보다 더 나은 일을 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루스의 연봉은 또 1천3백90달러를 기록했던 일반근로자들의 평균연봉보다 58배나 많았다.
50년대 프로야구선수의 평균연봉은 1만3천2백28달러를 기록했으며 당시 일반근로자들의 평균연봉(2천8백76달러)보다 4.6배나 많았다.
이후 70년대는 TV 중계 붐과 함께 자유계약제로 선수들의 연봉이 폭등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91년 프로야구선수의 평균연봉은 남자 근로자 평균연봉의 34배나 됐으며 여자 근로자 연봉보다 무려 49배에 달하는 60만 달러를 넘어섰다.
한편 미국 프로농구(NBA)도 지난 10년간 3백65%의 증가율을 보여 1백20만달러의 평균연봉을 기록하고 있다.
프로미식축구(NFL) 또한 최근 10년간 2백71%의 증가율을 보였으며 올 시즌 자유계약제를 채택함으로써 평균연봉이 50만 달러를 넘어섰다,
NFL의 선수연봉 총지급액은 10년전 1억8천6백만달러에서 6억6천만달러나 돼 2백50%의 인상폭을 보였다.
이같은 인상폭은 NFL의 총수입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10년전 4억8백만달러 수입에서 10년 사이 12억8천만달러나 늘어 2백13%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프로구단의 수입은 대개 입장료·TV중계료, 그리고 기업의 스폰서광고가 대부분이다.
NFL은 90년 9억1천2백만달러의 TV중계를 체결했는데 83년에 비하면 2백%를 넘는 금액이다.
한편 경기장 입장료도 관중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데 프로야구의 평균 입장료는 9달러57센트며 NBA는25달러16센트, 프로아이스하키(NHL)는 25달러19센트, NFL은 27달러29센트다.
이같은 입장료는 3천㏄ 승용차에 기름을 가득 담을 경우 20달러를 지불하는 것과 비교하면 비싼 편이다.
급등하는 선수들의 연봉과 기습적으로 조금씩 인상된 입장료에 대해 팬들은 따가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따라서 TV도 중계 수를 줄이거나 계약료를 삭감키로 했는데 광고주의 외면도 한몫하고 있다.
선수들의 치솟는 연봉과 이에 따른 지출을 TV중계권료 인상으로 만회하려는 구단과 방송사간의 이견·알력 및 일반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TV중계료 인하라는 처방책을 몰고 오게 만들었다.
84년 미국 전역에서 프로야구단과 맺은 TV중계료 총액은 1억8천7백만달러로 4년전인 80년의 4천7백50만달러에 비해 3.9배에 달했다.
또 84년 팀당 1백80만달러의 수입도 4년 후에는 4배인 7백20만달러나 됐다.
90년엔 선수 평균연봉이 59만7천5백37달러였으며 TV중계료는 3억6천5백만달러(팀당 1천4백만달러)로 프로야구사업의 호황기를 맞았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TV중계료를 94년부터 1억8천만달러로 하향 조정할 것에 합의한바 있어 팀당 배당금도 6백40만달러로 크게 줄어들게 돼 찬물을 끼얹고 있다.
연봉 1백만달러의 미국프로야구선수가 한 시즌 전 경기(1백62게임)에 출장하면 게임당 7천9백달러(약6백30만원)를 받는 셈이다.
3시간 남짓한 야구경기임을 감안할 때 프로야구 선수들은 시간당 2천6백달러(약2백만원)를 벌어들이고 있는데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금액이다.
이는 농구·아이스하키·미식축구 등도 엇비슷하다. 따라서 미국 프로스포츠는 선수들의 제한없는 연봉에 눌려 결국 고사위기를 맞고있는 것이다. <장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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