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외국인차는 “봉”(특파원 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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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라·직업따라 차색·번호 지정/경찰들 단속표적… 벌금 바가지
러시아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행동이 쉽게 노출되는 것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가 민주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외국인을 통제하기 위한 각종 제도가 존재하고 있는데다 외국인들이 갈만한 장소가 한정돼 있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감안한다 하더라도 친한 친구나 동료들로부터 『당신 어제 몇시부터 몇시사이에 어디 근처에 있었지』라는 질문을 받게되면 이 친구가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고 나중에는 어떻게 그것을 알았을까 하는 의문에 젖게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는 특별히 정보기관원이나 보안관련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몇가지 요령만 터득하면 누구나 상대방의 신분이나 국적 등을 손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모스크바에서는 자동차 번호판만을 통해서도 상대방 국적이나 신분 등을 알 수 있다.
모스크바의 외국인 소유자동차들은 모두 붉은색 이거나,아니면 노란색으로 되어있다.
외교관 등 국가기관 소속인 경우는 붉은색,민간인들의 경우는 노란색이다. 따라서 일단 색깔만 보아도 이 차의 주인이 외국인인지 아닌지를 쉽게 식별할 수 있다.
여기에다 직업에 따라 자동차 번호판의 이니셜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외교관은 D,특파원은 K,상사원은 M으로 자동차 번호판이 구분된다.
또 외교관의 자동차중에서도 대사의 차는 CMD(Chief Member Of Diplomats)라는 영문자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다 자동차 번호가 구소련과의 수교순서에 의해 001부터 시작되어 각국의 고유번호가 부여된다.
예를 들면 혁명후 구소련을 최초로 승인한 영국은 001이고 독일 002,미국 004,일본 005 등이다.
반면 국토의 분단으로 구소련과 수교가 늦은 한국은 124이고 북한은 087이다. 또 한국보다 뒤늦게 구소련과 국교재개로 정상적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은 127이다.
따라서 124가 적힌 붉은색이나 노란색 번호판을 달고 질주하는 자동차는 모두 한국인들이 자동차며 만약 이니셜이 D면 한국 외교관,K면 한국 특파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번호판으로 이렇게 국적·신분이 드러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선 차별을 받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모스크바의 악명높은 가이(교통경찰)들은 우선 외국인 차만을 집중적으로 단속한다.
가이들은 이중에서도 소위 돈 많은 자본주의 국가의 차를 번호를 통해 식별해내 벌금도 사회주의국가나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겐 적게 받고 자본주의 국가의 사람들에겐 많이 요구하는 것이 일쑤다.
자동차 번호판을 둘러싼 이같은 러시아 사회구조는 이곳에서는 여전히 행동의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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