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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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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베두인족에 이런 민화가 전해 온다. 한 노인이 천막 근처에서 칠면조를 키웠다. 어느 날 누군가 칠면조를 훔쳐갔다. 노인은 아들들을 불러 칠면조를 찾으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들은 “칠면조 한 마리가 그렇게 중요하냐”며 무시했다. 몇 주 뒤 낙타를 도둑맞았다. 아들들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노인은 “칠면조를 찾으라”고 했다. 몇 주 뒤 이번에는 말이 없어졌다. 이번에도 노인은 “칠면조를 찾으라”고 했다. 몇 주 뒤 노인의 딸이 강간당했다.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칠면조 때문이다. 놈들이 칠면조를 빼앗아 가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토머스 프리드먼,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영화 ‘랜섬(ransom)’(1996)에서 멜 깁슨은 아들을 유괴당한다. 범인들은 몸값으로 200만 달러를 요구한다. 하지만 깁슨은 TV 인터뷰에서 “넌 한 푼도 못 얻을 거야. 대신 이 200만 달러를 네 현상금으로 걸겠다”고 선언한다. 범인들이 아내를 납치해 폭행하자 현상금을 400만 달러로 더 올린다. 아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아내로부터 아들을 죽였다는 원망을 듣는다.

 야비한 놈에게는 예의가 없다. 참고 넘어가면 얕잡아 보고 더 큰 것을 빼앗으려 한다. 빼앗기는 것은 적선하는 것과 다르다. 빼앗은 사람은 그것이 자신의 정당한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착각한다. 돌고래나 햄스터가 먹이에 길들여져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또 범죄를 저지른다. 국제사회가 테러범과의 타협에 반대하는 원칙을 세운 것도 더 많은 무고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한국인 피랍자를 동료 수감자와 맞교환하자고 나선 것은 지난 3월 이탈리아 기자를 납치해 탈레반 수감자를 구출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인을 상대로 한 납치 사건이 빈발한다. 나이지리아에서 지난해 대우건설과 한국가스공사 직원, 올 1월과 5월 대우건설 직원들이 납치됐다. 소말리아 해상에서는 지난 5월 또 한국인 선원들이 납치됐다. 지난해 이곳에서 한국 어선을 납치해 117일 만에 돈을 받고 풀어 줬던 해적들이다. 당시 피랍됐다 풀려난 선원에게 전화를 걸어 협상을 독촉했단다. 한국인 납치에 단단히 재미를 붙인 것이다.

 악마와도 대화해야 한다. 하지만 무고한 민간인을 인질로 삼는 비열한 범죄자에게 관대하면 그 같은 행동을 반복하도록 부추기게 된다. 그래서 프리드먼은 “외로운 늑대로 가득 찬 세계에서 양으로 보이면 곤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