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비자금수사」 꼬리감추기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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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①“성역없는 수사 지켜봐달라”/②“잘되고 있어 국회 끝나면 조치”/③“물증도 안나오고 큰일이다”/④“사법처리 형평에도 안맞아…”/이원조의원 출국뒤 태도 돌변
문민시대 출범이후 검찰은 5,6공에서처럼 정치권의 눈치만을 살피던 「구태」에서 벗어나 엄정한 검찰권을 행사할 것임을 입버릇처럼 강조해왔고 6공 실세들이 무더기로 연루된 동화은행 비자금사건은 이같은 검찰의지를 시험하는 최초의 무대였다. 그 검찰의지가 지금 「의혹」이라는 이름의 무대위에 섰다.
동화은행 안영모행장이 「사정의 큰칼」이라는 대검중수부에 구속된 것은 지난달 23일. 시중백화점·호텔 등에서 허위영수증을 만들어 수십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기업체들로부터 대출커미션을 받아챙긴 혐의였다.
안 행장이 구속된뒤 2∼3일이 지나면서 정치권에서 먼저 『안 행장이 6공실세들에게 수억원대의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검찰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채 『성역없이 수사할 것이다. 결과를 지켜봐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돈세탁에 관하여」라는 논문까지 발표,검찰내에서 자금추적 수사의 귀재로 인정받는 함승희검사에게 사건을 전담시켜 안 행장이 뇌물로 건네준 수표들에 대한 추적에 나섰다.
검찰수사가 전환을 맞은건 중앙일보가 3일 안 행장이 돈을 줬다고 진술한 인사들의 명단과 뇌물액수를 보도하면서부터였다.
검찰 고위관계자들은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기자들에게 『수사기밀을 위해 얘기할 수 없지만 잘되고 있다. 정치권을 미리 자극할 필요가 없으니 보도를 자제해 달라. 임시국회가 끝나고 나면 필요한 사법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본사 기자들은 검찰이 추적하고 간 은행들을 역추적하고 동화은행 관계자들의 진술을 통해 검찰수사가 상당부분 진행됐으며 물증도 확보됐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검찰은 『피라미들은 물증이 쉽게 나오는데 대어는 세탁을 하도 많이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사법처리는 시간문제』라고 거듭거듭 말했다.
사건이 뒤틀리는 느낌을 주기 시작한건 이원조의원이 받은 수표가 결국 꼬리를 잡힌 10일께부터로 검찰간부들 사이에 『이 의원이 거의 죽을병에 걸렸다는데 큰일이다. 물증도 잘 안나오고…』라고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치권의 「타협설」,이 의원측의 「협박설」도 돌았다.
이 이원은 18일 돌연 출국했다. 관용여권을 반납,일반여권으로 바꾸는 등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거친 사실이 확인됐으나 검찰은 소환을 눈앞에 둔 「혐의자」의 동태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 의원 출국이후 검찰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 의원 2억원,김종인의원 3억원,이용만 전재무장관 5억원의 뇌물수수가 밝혀졌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검찰 고위간부들은 『허위보도가 나가게 된 진상을 파악하라』며 법석을 떨었다.
20일 김영수 청와대민정수석은 『검찰에서 물증이 확보안됐다』고 말했고,검찰은 『물증도 없고 김 의원만 사법처리하는건 형평에도 안맞아…』라며 내주초 소환예정은 「없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관계자의 수사중인 사건 「언급」도 부적절하고,검찰의 눈치보기식 「말바꿈」도 문민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법조 주변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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