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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33) 서울 성동 열린우리당 최재천씨

중앙일보

입력

“고향인 해남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오면 장담할 순 없지만 아마 안정적으로 당선될 수 있을 겁니다. 열린우리당을 택한 건 지역주의 정치 극복에 앞장서겠다는 결심의 첫 실천입니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겠다는 각오의 표현이랄까요?”

분구 대상인 서울 성동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하는 최재천(41) 변호사는 “정치권에 던져진 두 화두가 지역주의 정치 극복과 정치자금의 투명화인데, 이를 실현할 세력이 국민통합의 기치를 내건 열린우리당”이라고 주장했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정치 구조에서 후보자는 유권자보다 공천권을 쥔 당 대표를 끼고 돌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는 대표대로 공천권을 지렛대로 정치 헌금을 독점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후보자들이 정치 헌금을 조달하기 위해 기업에 손을 벌리게 마련이죠. 지역주의 정치와 불법 정치자금이 연동한다는 겁니다.”

법무법인 한강의 대표변호사인 최씨는 국내 의료소송 분야의 선구자다. 의료·산재·보험·교통사고 등 인신 상해 소송에서 그는 줄곧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의 편에 섰다. 99년엔 정부의 담배 정책에 맞서 담배 소송을 제기했다.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문익환 목사 등 24인의 재심 청구를 무료로 변론했고, 지난해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 소송을 맡았다. “법은 늘 상식”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퍼뜨리기 위한 글 쓰기를 즐기고, 방송도 자주 탄다.

“법과 상식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고, 이 일을 법률가로서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좋은 세상입니다. 법은 법조인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것이예요.”

광주일고와 전남대를 나와 같은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끝나지 않은 5·18’,‘의료과실과 의료소송’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법조계의 소문난 독서광이기도 하다.

▶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최재천 변호사는 광주일고 2학년 학생이었다. 당시 시위대에 섞여 있다 금남로에서 이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인생이 크게 바뀌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 날의 무력감이 마음 속에 원죄로 남아 그는 약자의 편에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가 됐고, 문익환 목사 등 민주화 운동 관련 24인 등을 무료 변론했다. 사진은 96년 가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 1백여 명이 5·18 책임자 처벌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오른쪽 위 안경 쓴 사람이 최 변호사.

지역구인 성동에서는 97년부터 구 고문 변호사로 일했다. 성동구 공직자 윤리위원장을 지냈고, 성동구 민원심의위 위원을 맡고 있다. 열린우리당 소속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이 아니고, 이를 실시하기 위한 절차나 정족수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한다”는 글을 썼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서는 그러나 좋은 점수를 줬다.

“과거 정치인들이 부패에 쉽게 물들었던 건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목표 달성을 절대선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하늘이 두 쪽 나도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든가 ‘그땐 당선만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길이었다’ 같은 말들에서 그런 사고를 엿볼 수 있죠. 노 대통령은 이런 정치문화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했다고 봅니다. 승자이지만 자신의 불법 정치자금과 측근 비리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를 넘어서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승리지상주의 문화를 버리고, 과정의 정당성을 추구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혼란은 그 과정에서 빚어지고 있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다”고 말했다. “어느 일이나 이타적인 속성과 이기적인 속성이 배합돼 있는데 정치는 이 두 가지 중 이타성이 가장 뚜렷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현실 정치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얘기라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불법 정치자금을 차로 떼다 민의를 왜곡하고, 비리 연루 혐의자를 보호하기 위해 민의의 전당을 방탄막으로 활용하는 게 요즘 정치다.

“정쟁으로 얼룩진 국회가 제 기능인 법 제정을 제대로 하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10여 년간 변호사로서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활용할 겁니다. 언제까지 정치가 썩었다고 욕만 할 겁니까? 저 역시 구정물을 뒤집어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죠. 그렇다고 그냥 앉아 있는 건 역사의 흐름을 외면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흙탕물이 튄다고 다들 피하면 정치는 맑아지지 않습니다. 찍을 사람 찍어야 정치가 맑아 집니다.”

이필재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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