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비워둔 공직자윤리법/이상언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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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일 폐회된 제161회 임시국회의 최대 결실은 공직자윤리법의 대폭 개정이다.
여야는 어쩌면 자신들의 목을 조이는 밧줄이 될지 모르는 법을 10여차례의 마라톤협상끝에 성사시켰다.
김영삼대통령도 20일 김종필민자당대표와의 주례회동에서 『공직자윤리법을 마련하면서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할것은 양보해 쟁점부분을 여야가 합의통과시킨 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야합의의 산물인 윤리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날아들지도 모를 칼날의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놓는 「지혜」를 발휘한 구석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재산등록을 거부한 공직자나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심사를 위해 자료제출을 요구할때 허위보고를 한 기관·단체의 책임자에게 1년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 조항이다.
정치특위가 제안설명에서도 밝혔듯이 윤리법을 개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산등록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대상 공직자들이 자신의 재산중 칙칙한 부분은 뒤로 감추고 깨끗한 부분만 대충 등록하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리법은 공직자들이 허위등록할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상징적이나마 형사처벌조항의 대상을 허위등록자에게 두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법리는 무시되고 눈가림의 제3자 처벌조항만을 두었다. 실제로 단 한사람의 범법자도 나오기 어려운 등록거부자,국세청등 허위자료를 보낼 가능성이 없는 기관장에게만 형사처벌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국회의원 자신들을 포함한 등록대상자들이 법을 어길 가능성이 많은 허위등록행위에 대해서는 고작 경고·2천만원이하의 과태료,해임 또는 징계를 규정했다. 간큰 공직자가 엉터리로 등록해도 형사처벌받는 불상사를 막아주는 안전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당초 『허위등록자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없으면 이 법은 만드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던 민주당측이 어떤 이유로 이런 기형적·편법적 법안에 동의했는지도 궁금하다.
또 『허위등록자 형사처벌규정이 있으면 국회의원등 공직자들이 무제한적으로 수사기관의 인지수사대상이 될수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를 편 민자당소속 특위위원들의 절묘한 지혜도 놀랍기만 하다.
재산을 줄이거나 은폐해 신고하지 않으면 절대로 처벌대상이 되지않을 것임에도 엉뚱한 사람들에게 형사처벌조항을 돌린 국회의원들의 본심을 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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