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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퇴계 주맥 잇는 영남학파의 거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 순찰사를 지낸 학봉 김성일의 4백 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학술발표회가「김학봉의 학문과 구국활동」을 주제로 22일 오후2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학봉 김성일 선생 순국 4백주년 기념 학술발표위원회」(위원장 이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에선 그의 친필『해사녹』『황주수성절침』등 유품 10여점이 전시되고 그를 기념하는 논문 17편을 담은 논문집이 간행된다.
이날의 소주제별 발표자는 ▲풍신수길 정권과 학봉선생의 해사녹=이우성 ▲경상우도에 있어서 학봉의 토적구국 활동=이재호(부산대 명예교수) ▲영남학파에 있어서의 학봉선생의 위치=이완재(영남대 교수) ▲학봉선생의 예학=학봉의 의리정신과 기행시에 나타난 검의 이미지=송재소(성균관대 교수)등이다.
학봉은 임진왜란직전 조선통신사 부사로 일본에 다녀온뒤『왜가 군사를 일으킬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고 잘못된 보고를 올린 실책만으로 일반에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왜적이 침입한다는 소식에 들떠 있는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한 발언이었다는 깃이 이날 발표하는 학자들의 평가다.
이재호 교수는 특히 임란당시 각 도의 의병장들과 관군들간에 반목이 심해 경상도에서도 의병장 곽재우와 경상감사 김수가 서로를 죽이려고 했던 상황이었으나 초유사를 맡은 학봉이 양편을 타이르고 조정에도 보고를 올려 사태를 무마시켰고 진주성방위도 그의 지휘아래 관군과 의병이 힘을 합쳤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이완재 교수는『숙종이 학계의 정설이 돼있다시피 학봉이 29세 때 스승 퇴계로부터 요순에서 주자까지 유학이 이어지는 내력을 명시한 병명을 직접 받은데는 사문의 도통을 전수 받는다는 특별한 뜻이 있었다』며 그를 퇴계의 주맥이라고 평가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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