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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새 확 달라진 두산重 勞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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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남 창원시 귀곡동 두산중공업. 꼭 1년 전인 지난해 1월 9일 이 회사에서 일하던 배달호씨가 분신자살했다. 이를 계기로 두산중공업 노사분규가 터져나왔다. 지난해 노사 및 노정 갈등의 도화선이 된 상징적 사건이다.

당시 노사 모두 강경으로만 치달았다. 결국 권기홍 노동부 장관이 직접 나서 사태를 '봉합'했다. 63일 만이었다. 이때부터 참여정부는 출범 초부터 '친노(親勞)'라는 평가를 받았다. 후유증은 만만찮았다. 무엇보다 두산중공업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졌다. 4조원을 예상했던 수주액이 2조1천억원에 그쳤다.

경영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그래도 노사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대립했다. 그러나 분규 1주년을 앞둔 8일 두산중공업의 분위기는 확 달라져 있었다. 공기업(한국중공업)시절부터 분규가 잦던 과거의 두산중공업이 아니다.

"노조와 터놓고 얘기하고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 이젠 투명 경영에 매진할 때다."(정석균 전무)

"단 1%라도 노조 때문에 경영사정이 악화된다는 말이 나오면 안 된다."(강대균 노조지회장)

상대를 비난하던 노사가 '회사 살리기'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무엇이 회사를 이렇게 바꾼 것일까. 역시 노조의 '결심'이 먼저다. 姜지회장은 지난해 10월 취임하자마자 회사가 내놓은 명예퇴직제 실시에 전격 동의했다. 구조조정에 대한 노사간 합의는 창사 이래 처음이다.

"명예퇴직은 포장된 해고인데 마음이 편할 리 있겠습니까. 하지만 회사가 너무 어렵다보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실리를 택한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 죽느냐, 희생을 각오하고 다수를 살리느냐의 기로에서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로써 6천2백여명의 종업원 중 22.6%인 1천4백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회사도 노조의 결단에 화답했다. 명예퇴직자들에게 두둑한 퇴직금을 줬다. 또 3년간 자녀 3명의 학자금을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여기에다 명퇴자 자녀를 우선 채용해 '대를 이은 고용'을 보장하는 파격적인 조치도 내놨다.

이 같은 노사의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지난해 말에는 노사가 밤을 새워가며 임금협상을 분규없이 타결했다. 대화와 타협의 관행이 선순환을 탄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예상치 못한 역풍에도 휘말렸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姜지회장을 징계위에 회부한 것이다. 姜지회장은 "내부에서 지적도 많지만 어차피 내가 보듬고 가야 할 아픔"이라며 "조직에는 원칙이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도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회사 관계자는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삼는 금속노조로서는 두산중공업 노조가 이적행위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올해의 두산중공업 노사 관계는 또 어떻게 변모할까.

"당장 경영이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종업원에 대한 근무조건 등을 개선 발전시키면서 회사 발전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姜지회장)

"이제 노조는 경영의 파트너입니다. 주5일 근무제 등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대화와 투명 경영으로 올해를 무분규 원년으로 꾸릴 것입니다."(정석균 전무)

노사 모두가 회사 살리기라는 하나의 목표로 방향을 튼 것이다. 노사 관계 선진화를 위해선 꼭 장황한 로드맵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창원=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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