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명예회복(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80년 5월의 그 참혹했던 비극은 이제 그 명예를 찾고 올바른 역사적 자리매김을 받게 됐다. 김영삼대통령이 13일 발표한 담화는 지금까지 막연하게 지칭돼오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민족사적 의의를 분명히 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현정부가 「그 연장선상에 서 있는 민주정부」라고 규정함으로써 역사적 정통성을 확인하고 앞으로 그 정신의 계승에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 가장 쓰라린 민족적 비극이었던 「광주사태」는 이제 새로운 조명과 올바른 평가를 받아 역사에 기록되게 된 것이다.
지난달 5공정권은 5·18을 국가전복과 내란을 기도한 폭동으로,당사자들을 폭도로 단죄하는 가해자의 논리로 일관했다. 5공을 계승했던 노태우정부는 한발짝 물러나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긴 했으나 어떤 후속조치도 없었다. 피해자들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했을뿐 명예회복이라는 현지의 간절한 요구는 외면해왔다. 김 대통령의 이번 담화가 그동안의 정치적 한계를 뛰어넘어 명예회복과 추가적 보상은 물론 기념사업까지 약속하고 있는 것은 합당하고 적절한 조처로 생각된다. 기념일의 제정을 비롯한 각종 기념사업은 과거의 불명예를 씻어주는 일이며,정신적인 것까지를 포함한 모든 피해에 대한 상징적 보상이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의 담화내용이 광주시민들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하면서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핵심사항을 배제하고 있는데 대해 현지에서는 당연히 불만과 아쉬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것을 훗날 역사에 맡기자고 했다. 이같은 그의 주장은 대통령선거유세에서도 밝힌바 있어 그로선 일관된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명예회복을 위해선 논리적으로 진상규명이 불가피하다. 당시 야당후보였던 김대중씨도 보복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었다. 대부분 광주시민들의 생각도 보복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책임자의 규명과 그들의 사과에 따른 국민의 용서와 정치적 사면이라는 수순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므로 국민의 대화합이라는 궁극적 목표에서는 뜻을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김 대통령의 이번 조처가 구원을 다시 들추고 쓰라린 상처를 헤집어 갈등과 분열을 재연하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치적 환경과 사회여건의 변화에 따라 사고와 주장도 이에 적응하는 조절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김 대통령의 이번 조처는 광주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광주의 5·18은 잔혹한 탄압에 대한 항거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 장기화하는 독재정치에 대한 민주화의 갈망,부당한 지역차별에 의해 쌓인 한과 울분의 폭발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념사업이 항쟁의 정신을 기리는 것이라면,그 정신이 요구하는 민주화와 망국적 지역감정의 해소야말로 실천돼야 할 과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