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가능한 법을 만들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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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래 끌던 공직자윤리법 개정문제를 마침내 국회특위가 다루기 시작했다. 바로 얼마전 자발적 형식의 재산공개가 몰고온 엄청난 파문으로 큰 상처를 입은 여야의원들이 내심 달가워할리 없는 이 법개정문제를 어떻게 끌고 갈는지 우리는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의원들이 싫어하든 않든 이 법개정은 빨리 실현돼야하고 개정된 법에 따라 엄정한 재산등록과 공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야가 각기 내놓은 개정안을 보면 모두 법적용 대상자를 확대하는 등 최근의 사정바람과 국민의 눈길을 의식한 것이 역연하다. 민자당안은 재산등록 대상자를 현행 3급에서 4급이상으로 확대하고 공개대상자를 1급이상으로 했으며 민주당은 한술 더 떠 등록대상자를 6급이상으로,공개대상자를 3급이상으로 하자는 주장이다. 민주당안을 보면 일종의 선명경쟁의식이 작용한듯 함께 등록 또는 공개할 친족의 범위에 있어서나 처벌규정 등에 있어 여당안보다 훨씬 엄격하다.
우리는 여야가 이 법에 관해 겉으로 표명하는 「강력한 개혁의지」만은 미상불 평가하지 않을 수 없으나 국민 눈길의 과잉의식과 선명경쟁에 따른 이견 등으로 법개정이 또 늦어지거나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입법이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가령 민자당안대로 하더라도 등록대상자가 3만여명,공개대상자가 6천7백명이나 된다. 민주당안으로는 각각 10만여명,9천5백명이 된다. 지난번 장·차관,의원 등 고작 수백명의 재산공개만으로도 그토록 파문이 크게 일고 의혹대상이 된 수많은 사례를 제대로 실사하지 못했는데 수만명의 재산을 실사 확인할 능력이 정부에 과연있는 것인가. 필경 대규모 인력·예산의 뒷받침이 따라야 할 터인데 여야가 이런 점도 고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도입되는 재산공개제도의 원만한 정착과 이로 인한 공직사회의 부패방지효과다. 법을 아무리 강력하고 엄격하게 만들어도 지켜지지 않거나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면 헛일이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여야가 이 법을 놓고 지나친 선명경쟁과 과잉의욕을 삼갈 것을 우선 당부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실행가능한 법을 만들어 철저히 실시되도록 하는게 중요하다. 이 법 하나를 잘 만들어 공직부패를 1백% 방지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과욕일 것이다. 공직부패를 응징하는 법은 형법·세법·특가법… 등 여러가지가 이미 있다.
벌칙·재산공개·친족의 범위 등 몇가지 중요한 대목에 관해 여야가 이견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가 보기에 양쪽 주장 모두 일정한 논거를 갖고 있음이 사실이다. 문제는 헌법에 보장된 사생활의 비밀 및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지 않으면서 실시 가능한 범위내에서 최대효과를 거두는 선이 어디쯤이냐는 현실인식일 뿐이다. 그런만큼 여야는 이 문제로 정국주도권을 잡아보자는 따위의 정략보다 우리 현실에서 가장 합리적인 법을 만든다는 자세로 심의에 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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