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유류값 급등 서로 '네 탓' 하는 정부·정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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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유사들이 공장도가격을 실제보다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정유사들이 공표한 휘발유 공장도가격은 L당 603원(세전 기준)이었다. 그러나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실제 판매한 가격은 L당 563원에 그쳤다. 공장도가격을 실제보다 40원 높게 발표한 것이다. 경유는 L당 77원, 중유는 118원 부풀려졌다.

 정유사들은 공장도가격이 소비자 편의를 위해 제시한 기준가격일 뿐 실제 출고가와 다르다고 해명했다. 업체 간 경쟁 때문에 실제 출고가는 낮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설명을 왜 이제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 국민은 공장도가격이 출고가인 것으로 알았다. 공장도가격이 부풀려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공장도가격이 비싸니 이 가격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소비자가격도 비쌀 것이라고 어림짐작했다.

 정부의 행태도 한심스럽다. 그동안 기름의 가격구조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이번 조사도 유류세를 낮추라는 여론이 비등하자 화살을 정유사에 돌리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정유사를 궁지로 몰아넣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꼼수 아닌가. 정부가 유류세를 내리지 않는 표면적인 이유는 기름값이 떨어지면 과소비가 생긴다는 것이다. 기름값을 내리면 죄다 차를 끌고 나올 것이라는 얘기인데,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진짜 이유는 손쉽게 거둘 수 있는 세금을 포기하기 싫어서다. 기름값의 60%를 차지하는 유류세는 지난해 26조원이나 걷혔고, 6년 새 10조원 늘었다. 대형 국책사업을 하고, 공무원을 증원하며 지출을 늘려온 정부가 국민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이런 세금을 양보할 리 없다.

 정부와 정유사가 꼴사나운 ‘네 탓’ 공방을 벌이는 동안 휘발유 소비자가격은 지난주 L당 1557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국민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정부와 정유사의 끝없는 변명에 지쳤다. 선진국에 비해 기름값이 너무 비싸다는 문제의 본질을 인정하라. 유류세를 인하하고, 시장 질서를 바로잡아 국민의 기름값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