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도 시장원리 도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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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의료가 멍들고 있다. 정부의 의료정책이 경제논리를 도외시한 채 반시장적 통제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젊은 치과원장이 국내에서는 규제 때문에 더 이상 병원을 키울 수 없어 중국 등 해외로 나가겠다는 인터뷰는 우리 의료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내 의료는 겉으로는 화려하다. 누구나 본인 부담금 3천원으로 진료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안으로 곪아터지고 있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는 여전하다. 의과대학을 갓 나온 초보의사나 수십년의 임상경력을 지닌 의사나 똑같은 수가가 적용된다. 건강보험 적용범위를 벗어나면 심지어 자기 돈을 내고 받는 치료도 현행법상 불법이다. 대부분의 신약과 최신 치료도 일부 중증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이 때문에 지금도 부유층은 해외 유명병원으로 몰리고 있다. 외국 어떤 병원엔 한국어 전담 통역요원만 10여명에 달하며 질좋은 의료를 받기 위해 소비되는 외화만 연간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의료 공급자도 불만족스럽긴 마찬가지다. 영리법인이 허용되지 않아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가 불가능하다. 우수한 인력들은 죄다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 비보험 진료과목으로 빠져나가 심장병과 암 수술 등 필수진료를 담당할 인력이 태부족이다. 이러다 보니 병.의원은 편법에 매달려 수익을 보전코자 한다. "원장(공식 보험진료)으론 적자지만 사장(영안실과 호화 검진 등)으론 흑자"란 말이 공공연하다.

의료는 속성상 정부의 간섭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공공재다. 그러나 현행처럼 획일적인 통제 일변도 정책만으론 곤란하다. 점증하는 의료수요와 개방화 시대에 걸맞게 시장원리가 일정 부분 도입돼야 한다. 의료기관의 영리법인 허용과 민간보험 도입이 전향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우선 경제특구에서만이라도 이 같은 조치가 시행돼야 한다. 계층 간 위화감 문제는 공공의료의 강화로 해결할 수 있다. 의료도 파이를 키워야 나눠줄 것이 많다. 외국의 부유한 환자들이 한국 병원을 찾아 달러를 쓰고 가도록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