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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끊긴 역사화「새움」튼다|「노산군 일기」전등 잇따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한국현대미술에서 명맥이 끊겼던 역사화가 화단전면에 재등장, 독립된 장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날 우리의 역사적 사건을 회화로 재조명하는 이 작업은 작년 서양화가인 강요배씨가 「4·3제주항쟁」을 주제로 작품발표를 한데 이어 올해는 서양화가 서용선씨(42·서울대교수)가 단종을 주제로 한「노산군 일기」전을 7∼16일 신세계갤러리에서 갖는다. 또 민족미술협의회와 제도권 미술가들로 이뤄진 동학 백주년기념 전시조직위원회도 최근 발족과 함께 동학을 주제로 한 매머드 전국 순회전시회를 내년 4∼10월 갖기로 하고 이 달 말까지 참여작가선정작업을 마무리짓는다.
이미 발표됐거나 발표예정으로 있는 이들 전시회는 지금까지 단순히 사건전개과정 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데 그쳤던 기록화에서 벗어나 작가의 역사의식이 반영된 주관적 관점으로 사건을 재해석해낸다는 점에서 화단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용선씨의 이번 전시회는 86년 여름 강원도 영월에 들렀다가 단종이 유배됐던 청령포의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작품화하기로 한지 7년만에 선보이는 것. 당초 10년간으로 예정했던 역사화 작업의 중간점검인 셈인데 유화27점과 꼴라주 1점 등 모두 27점을 선보인다.
그간 민중미술과 순수미술로 크게 양분돼 있던 국내 화단을 하나로 묶는 뜻깊은 전시회이기도 한 「동학백주년 기념전시회」는 김서봉·최종태·이종상·이승택·김영덕씨 등 이른바 제도권 미술인과 김정헌·오원배·정영목·임옥상·민석채씨 등 민족미술인 들이 고루 참여하고 있다.
이미 한차례의 합동 모임을 가진 바 있는 이들은 동학에 얽힌 소재로 작품을 하자는 데 뜻을 함께 했는데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정헌씨는 『기록화와 비슷한 개념으로 굳어져온 역사화를 작가의 주관을 반영시키는 쪽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전시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역사화의 재등장은 과학주의에 치중된 오늘날 미술의 관심을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쪽으로 되돌리는 한편 과거의 역사가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투영돼 도도치 흐르고있음을 일깨워 줄 것으로 기대된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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