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사, 사흘 기다려 카르자이 만났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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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인질 석방 교섭을 위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급파된 백종천 대통령 특사(左)가 29일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만나 한국 정부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카불 AFP=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인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간의 29일 면담에서 인질 석방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특사가 카르자이 대통령을 만난 것은 아프간 수도 카불에 도착한 지 사흘 만이었다. 외교 관례상 대통령 특사의 접견자는 상대방 국가의 정상(頂上)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고민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미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카르자이 대통령은 '테러와의 협상은 없다'는 미 측의 원칙과 '탈레반 죄수와 한국인 인질을 맞교환하게 해 달라'는 한국 측의 요구 사이에서 고민했을 법하다.

백 특사는 이날 면담에서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공식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백 특사는 한국인 피랍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 공조 체제를 강화하고 아프간 정부가 석방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특히 탈레반 수감자의 석방에 대해 아프간 정부의 유연한 대응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간에 대한 경제지원 확대 카드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탈레반은 인질 석방의 첫 번째 조건으로 '탈레반 수감자-한국인 인질'의 맞교환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로선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탈레반 수감자의 석방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에 대해 카르자이 대통령은 기나긴 장고 끝에 원칙론 고수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맞교환'을 수용할 경우 미국은 전 세계 차원의 대(對)테러전을 하는 큰 원칙이 훼손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도움으로 권좌에 오른 카르자이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아프간 대통령궁은 카르자이 대통령과 백 특사의 면담 뒤 "한국인 인질 22명의 석방을 위해 아프간 정부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면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양측의 면담 시간과 관련, 한국 정부는 '50분'이라고 밝혔다. 이에 비해 아프간 대통령궁은 '15분'이라고 말했다. 양측이 핵심 쟁점인 '맞교환'을 보는 시각 차이를 드러내는 대목 중 하나다. 일각에선 "번역상의 잘못일 수 있다"고 말하나 이날 면담에 대한 양측의 자세가 다른 것은 확실하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28일 인질 석방의 키를 쥐고 있는 미 정부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전화통화를 했다. 두 장관은 "이번 사태의 해결 과정에서 양국이 긴밀히 협조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아랍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이날 "탈레반이 석방을 요구하는 수감자 중 일부는 미국이 관할하는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백 특사의 카르자이 대통령 면담, 송 장관의 라이스 장관 전화통화에서 협상의 물꼬를 트지 못함에 따라 인질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탈레반이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과격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 데다 대통령 특사 카드까지 사용한 한국 정부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과 아프간 정부 모두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탈레반이 '맞교환' 요구를 변경하지 않을 경우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인질 추가 살해 같은 불행한 사태가 터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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