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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떳떳해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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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27일 청와대에서는 제1회 국가인적자원회의가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장이다. 김신일 교육부총리와 권오규 경제부총리 등 16개 부처 장관이 모두 참석했다. 대학총장·교사·공무원·시민단체 인사 130여 명도 함께 했다.

 노 대통령은 “정권 말기에 또 무슨 위원회냐”는 비판론을 인식한 것 같다. 그는 “출발만 하고 완성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겠지만 인적자원이 국가 경쟁력인 만큼 정책을 조율할 위원회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0분간 대통령의 연설도 있었다. 참석자들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마도 6월 26일 열렸던 노 대통령과 대학 총장 152명의 토론회가 떠올라서일 것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총장들을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강자’ ‘완장 찬 사람’에 비유했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은 대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제학업성취도(PISA) 평가에서 우리나라가 문제 해결 능력 1등이다. 이런 높은 성적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반면 “대학 교육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다”고 지적했다.

 돌려 말했지만 결국 우리 고교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이들을 받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대학이 문제라는 뜻이다.

 회의에 참석했던 A교수는 “노 대통령이 PISA 평가만 갖고 교육이 잘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오류”라고 주장했다. 한국 학생들은 문제 풀이 능력이 1등이었다. 하지만 자기주도적 학습 관련 영역에서는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이는 한국 학생들이 달달 외우는 획일적 교육을 받아 문제는 잘 풀지만 창의력은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 A교수의 주장은 모두 일리도 있고 한계도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대학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비판과 질책을 일방적으로 받아왔다. “대통령이 세계사의 조류와 동떨어진 평등주의적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는 등의 지적이다.

 이런 비판은 옳다. 하지만 대학들은 잘해 왔나. 그 어느 누구도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대학들은 “이공계 학생들이 수학을 못해 큰일”이라고 입만 열면 하소연한다. 하지만 올 대입에서 이공계 전공에 꼭 필요한 ‘수리 가’형을 요구하는 대학은 31곳뿐이다. 대학들이 자기 학교 지원율을 높이려고 미적분을 공부하지 않은 학생들을 마구 뽑고 있는 것이다.

 인프라 투자는 어떤가. 4년제 대학에서 교수가 아닌 시간 강사 등 비전임 교원에 의존하는 비율이 60%에 가깝다. 덤핑하듯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도서관 예산은 연평균 고작 10억원이다.

 국제경쟁력도 마찬가지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대학교육 경쟁사회요구 적합도(2006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4.9점을 받았다. 61개국 중 50위였다. 영국 더 타임스의 대학평가에서 세계 200권 대학은 세 곳(서울대 63위, 고려대 150위, KAIST 198위)뿐이다. 2006년 과학기술논문색인(SCI) 건수에서 100위 안에 든 곳은 서울대(32위)뿐이었다.

 “4년제 대졸자를 제대로 써먹으려면 20개월 정도 걸리고 재교육 비용은 6000만원이 든다”고 한국경총은 하소연하고 있다. 전국 200개 4년제 대학이 매년 37만 명씩 뽑아 졸업장만 남발한 결과다.

 노 대통령의 ‘대학 간섭’은 잘못됐다. ‘대학 총장들에 대한 집단 훈시’도 해외토픽에나 나올 얘기다. 하지만 물어보자. 대학들은 얼마나 떳떳하게 교육부와 노 대통령에 대해 “NO”라고 얘기할 수 있는가. 정권이 강력할 때는 고개 푹 숙이고 눈치만 보다 정권 말기가 되면 “우리가 잘 못하는 건 정부의 간섭 때문”이라고 발뺌하는 건 비겁하다. 대학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