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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두 여성의 힘, 가난도 폭력도 이겨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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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두 번째 소설 『찬란한 천 개의 태양』을 출간했다. 작가 자신도 깜짝 놀랐다는 첫 소설의 대성공에 이어 이번 책도 독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열림원)에서 전쟁의 와중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두 아프가니스탄 소년들의 우정과 배신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한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 두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주제다.

 소설은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가련한 모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마리암은 부잣집 주인과 하녀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회한에 사무친 엄마는 마리암이 열다섯이 되자 자살한다. 다감하지만 유약한 성격의 아버지는 세 명의 정실부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열 다섯 살의 마리암을 사십대 중반의 홀아비 라시드와 결혼시켜버린다. 처음에 다정했던 남편이 마리암이 자꾸 유산을 하자 비정한 사내로 표변한다. 아들을 바란 그에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노예나 다름 없다. 거듭되는 모욕과 폭력은 마리암의 인간성을 파괴시켜간다. 그때 폭격으로 온 가족을 잃은 이웃의 라일라가 두 번째 아내로 들어온다.

 라일라는 대학강사였던 아버지의 지도 아래 고등학교를 다닌 우등생이었으나 이제는 오갈 데 없는 몸이다. 거기에다 피난 가 버린 애인의 아이를 임신 중이다. 마리암은 처음에는 라일라에게 적대적이었으나 아이가 태어나자 점차 태도가 바뀐다. 둘은 이내 자매 같기도 하고 모녀 같기도 한 사이로 발전한다. 여자들에게 특히 폭압적인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자 남편 라시드는 기뻐한다. 하지만 화재로 가게를 잃은 그는 폭력으로만 군림하는 가부장이다. 결국 마리암은 라일라를 구타하는 남편을 쳐죽이고 자신도 탈레반의 손에 사형당한다.

 호세이니의 소설은 개인의 삶을 침범하는 거대 역사의 흐름을 문화적 배경과 함께 능란하게 버무려 낸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마리암이 수시로 어떤 시의 구절들을 떠올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슬람 문화는 아직 시가 살아있는 문화다. 소설의 제목 ‘찬란한 천개의 태양’ 은 아프가니스탄의 17세기 시에서 빌려온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월인천강지곡쯤 되겠다. 극도로 끔찍한 현실은 시의 힘에 취하지 않고선 들추어내기 힘든 것일까.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그리는 마음은 그만큼의 어둠을 노래하고 있다.

 전쟁을 치르는 것도 남자들이지만 피난을 가는 것도 남자들이다. 하지만 뒤에 남겨진 것은 여자와 아이들이다.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나나는 딸 마리암에게 말한다. “잘 보아 두어라, 소리 없이 내리는 저 눈은 여자들이 내쉬었던 한숨이 서리서리 쌓여 있다 내려앉는 것이다.” 세계에서 대인지뢰가 가장 밀도 높게 깔려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내리는 눈은 평화의 눈이 아니라 이처럼 미움과 분노가 낙진처럼 내리는 눈이다.

 처참한 가난과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새로 태어난 여자 아이를 지키려는 두 여자의 이야기는 끔찍하지만 손에서 책을 내려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세계의 진실을 이 소설이 알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이란 어쩌면 무지의 충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영준<문학평론가>

이영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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