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노동장관의 이상과 현실/제정갑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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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인제 노동부장관이 요즘 TV방송 드라마에 단역배우로 출연하기로 해 화제가 되고있다. 현역 국회의원이며 45세의 최연소장관으로 그동안 진보적인 성향을 보여온 그의 드라마 출연방침은 「그다운 참신한 시도」라는 평과 정치가로서 「안면 알리기」가 아니겠느냐는 비아냥도 없지않다. 드라마 출연이 아니더라도 요즘 그의 언행은 여러모로 노동계·업계 등에서는 주목대상이 되고있다. 야당 국회의원시절부터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근로자와 기업주의 중간에 설 수밖에 없는 노동부의 현실적인 위상과 평소 소신을 어떻게 조화해 나갈지에 대해 취임때부터 관심거리였다.
대전지법판사를 자진사퇴하고 변호사를 거쳐 정계에 입문이후 노사분규가 폭발했던 80년대후반 13대 국회노동위 위원으로 맹활약했던 그의 면모때문이다. 그에 대한 관심은 굳이 말하자면 「노동계의 기대와 업계의 긴장」으로 대별할 수 있다. 실제 취임직후 그는 해고 근로자의 일괄복직을 천명하고 노동조합법위반 혐의로 사상 처음 대기업 회장을 소환,조사함으로써 새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변화에 대한 업계측의 긴장을 불러 일으켰다.
반면 재야노동단체와는 대화에 나서 실마리를 풀어가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얼마전 구속·수배·해고노동자 원상회복을 촉진하는 재야인사들의 방문을 받고 면담을 가진뒤 함께 점심을 나누는 등 그의 설득력있는 대화자세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정부가 「노동자」라는 말 대신에 「근로자」라는 말을 고집하는데 대해서도 『그럴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앞으로 구분을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이같은 언행에 대해 「소신에 의한 패기」란 평가와 「아마추어적인 행동」이란 지적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언행은 과거 정권의 노동정책에서 엿볼 수 있는 일종의 노동계콤플렉스가 상당히 완화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재야인사들과 대화를 기피하고 「근로자」라는 명칭을 고집할 수 밖에 없었던 과거 노동정책이 본질문제해결을 어렵게 했다면 그는 이점에서 나름대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노동문제는 모두 무시할 수 없는 근로자와 기업가의 입장 차이에 미묘한 조율이 필요한 현안이다. 특히 최근의 노동계는 임금투쟁보다는 부정부패척결·금융실명제 조기실시 등 사회·경제개혁에 무게중심을 두고있다.
문민정부의 신세대 장관으로서 그의 이같은 자신감이 노동계의 변화를 수용하면서 현실문제해결에서도 훌륭한 조율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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