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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비리수술 적기”판단/사법부 「개혁」왜 서두르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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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화」소장법관요구 수렴/보류됐던 획기적 내용 담아
대법원이 사법부 대개혁에 착수,5월중 시행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은 법원도 더이상 「개혁 무풍지대」로 남을 수 없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의 판사실 출입을 금지시켜 비리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법관회의를 활성화해 판사들 사이에 자유로운 의견교환이 이뤄지게 한다는 것등을 골자로 하는 사법부 개혁안은 오래전부터 계속 논의돼왔다.
특히 새정부 출범이후 각계각층에 개혁바람이 불면서 법관들 사이에서는 『이 기회에 사법부도 달라져야 한다』는 광범한 공감대가 형성됐었다.
최근 국회의원과 장·차관들의 재산공개가 이뤄졌을때 소장판사들은 『사법부도 재산을 공개해 개혁운동에 동참해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사법부 수뇌부들은 『공직자 재산공개법이 개정되는대로 절차에 따라 공개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같은 입장은 법을 지키고 수호해야할 사법부가 정치권의 바람에 너무 쉽게 휩쓸려서는 안된다는 명분의 뒷받침을 받아 일부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큰 무리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이 와중에서 최근 서울지법 서부지원 민사1단독 김종훈판사(36)의 「개혁시대 사법의 과제」란 글이 공개됐다. 김판사는 이 글에서 재산공개에 대해 사법부가 보인 모호한 태도를 정면 비판하고 『법관이 자신의 의사를 사법부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토의·검증받을 기회가 없다』며 사법부의 비민주성을 성토했다.
김판사의 주장은 소장판사들 사이에서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6공초 소장법관들의 서명파동으로 대법원장이 사퇴까지 했던 사태를 겪었던 사법 수뇌부들에게는 똑같은 전철을 되풀이하는게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대법원이 서둘러 사법부 개선안을 시행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같은 주변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리부터 준비돼왔다고는 하나 5월중순부터 곧바로 시행에 들어가기로 서둘러 결정한 것은 사법부의 보수성·신중성을 생각할때 매우 파격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개선안의 내용은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변호사들의 판사실 출입을 막고 법정변론만으로 사건을 판단하겠다는 것은 지금껏 일부 변호사들이 「논리」보다는 「로비」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심한 경우 판사에 대한 로비자금 명목으로 소송의뢰인에게 돈을 받아내는 경우까지 있었던 풍토를 일소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평판사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기 위한 법관회의 활성화나 검사가 판사실에 찾아가 영장을 청구하는 것을 막겠다는 방안도 오랫동안 논의돼왔지만 번번이 정착되지 못했던 것들이어서 사법부 개선안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따라서 사법부 개선안이 정식 시행되는 5월중순부터는 법조주변의 모습과 관행이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법부는 정치권을 포함한 모든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한 사회의 마지막 정의의 보루로 남아야 한다.
과거의 그릇된 관행과 비민주적 요소에 대한 대대적인 자성 및 수술작업을 천명한 이번 사법부 개선안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는게 법조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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