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굵직한 소리 묵직한 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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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과 절도 있는 음색으로 유명한 돈 코사크 합창단(Don Cossack Chorus)은 비참한 환경에서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터키의 포로가 된 러시아 병사들은 1920년대 이스탄불 근처의 작은 마을에 수용됐고 추위와 굶주림, 콜레라가 그들을 위협했다. 포로 중 장교들은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합창단을 조직했고 이후 그리스·불가리아 등지의 포로생활에서도 노래를 계속했다. 남성으로만 구성된 합창단은 전쟁이 끝나고도 특유의 깊이와 울림으로 유럽과 미국을 휩쓸며 큰 사랑을 받았다. 러시아 민요가 세계적으로 퍼진 것도 이때다.

 한국에서도 56명의 남성 성악가가 한 무대에 선다. “남성 발레리노만 나오는 ‘백조의 호수’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성악 무대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합창단 ‘이 마에스트리(I Maestri·사진)’의 각오다. 이 합창단을 조직한 성악가 양재무(47)씨는 “돈 코사크 합창단에 못지 않은 한국 성악의 저력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하고 있다.

테너·바리톤·베이스로만 이뤄진 굵직한 소리는 여성 합창에서는 들을 수 없는 울림을 자랑한다. 모두가 같은 음을 노래해도 아래 위로 두 옥타브 정도의 배음(倍音)을 들을 수 있다. 노래하고 있는 한 음뿐 아니라 그 음을 둘러싼 화음까지 들을 수 있는 것. 무게감의 비밀이 이 배음이다.

 이번 공연은 그레고리안 찬트로 시작한다. 라틴어 가사로 부르는 가톨릭교의 예배음악이다. 프로그램은 비극적이고 파워풀한 음악인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부라나’로 이어진다. 혼성 합창곡을 남성의 음역에 맞춰 편곡했다. 이들의 소리를 뒷받침할 반주 또한 힘이 필요하다. 피아노 두 대(김주영·다그마 두즈도바)와 카로스 타악기 앙상블이 맡았다. 30~40대의 전성기 남성 성악가들이 세계 클래식 무대에서 한국인들이 주목받는 이유를 보여줄 듯하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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